무역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다. 수출의 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율이 1960년대 9%에서, 90년대 76%로 늘어난 데 이어 2000년대에는 98%로 경제 성장을 거의 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수출 2,538억달러가 만들어낸 일자리는 모두 420만개로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한다. 무역의 성장이 곧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인 셈이다.
2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10월 20일까지 수출 누적액은 2,484억달러로 연말까지 2,8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남미 38개국 전체의 수출 규모(2,763억달러)와 아프리카 53개국 전체 수출규모( 2,317억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수입 누적액도 이 기간 2,288억달러를 기록, 연말까지 2,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수출과 수입을 합친 올해 우리나라 총 무역액은 5,50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산업자원부의 전망이다. 무협 관계자는 “지난해 무역액이 5,000억달러를 넘은 나라는 미국, 일본 등 총 11개국이며, 이중 중국을 제외한 10개국이 모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는 나라”라며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나 전반적인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수출의 견인차는 반도체, 휴대폰 등 전자 정보통신(IT) 제품과 자동차. 1~10월 반도체가 251억달러, 자동차가 235억달러, 휴대폰이 226억달러어치 수출되며, 전체 수출액의 40% 가량 차지했다. 수출 상품수는 올해 8,400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 미국, 일본이 우리나라의 3대 수출 시장으로 이들 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 의 44.8%에 달한다. 총 수출국은 올해 240개국이다.
최대 수입품은 원유다. 1~10월 원유 수입액(343억달러)은 전체 수입액의 16.1%를 차지했으며, 반도체(207억달러), 철강판(65억달러), 천연가스(65억달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최대 수입 대상국은 단연 일본으로 올해 1~10월 이미 401억달러에 달했고, 중국과 미국이 각각 316억달러와 252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5,500억달러 무역액 달성을 마냥 축하하고 있을 순 없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우선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추월하며 무역흑자액이 줄어들고 있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1~10월 수입 증가율은 16.2%로 수출 증가율(12.3%)보다 높다. 수입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엔 수출증가율이 31%, 수입증가율이 25.5%였고 2003년에는 19.3%와 17.6%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올해 무역흑자액도 지난해 294억달러보다 15% 가까이 줄어든 25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물론 올해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최대 수입품인 원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나 구조적 원인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특히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가 수입도 2위라는 것은 장기적 대책 요구가 절실한 대목이다. 실제로 반도체 제조용 장비와 정밀기계, 부품ㆍ소재 등 반도체 관련 자본재의 경우 70~90%를 해외, 특히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결국 삼성전자가 아무리 설비투자를 늘려도 국내 경기가 활성화하기는커녕 대일 무역 적자만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수출증가→투자증가→생산증가→고용증가→소득증가→소비증가’ 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도 끊겼다.
국가별 무역 수지에서도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1~10월 우리나라는 중국에 510억달러를 수출하고 316억달러를 수입, 194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에도 337억달러를 실어내고, 252억달러를 들여와 85억달러의 흑자를 봤다. 그러나 일본에는 197억달러어치를 팔고 401억달러를 사들여 무려 204억달러의 적자를 본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만 해결해도 우리나라 총 무역흑자액이 2배로 늘어날 수 있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는 조만간 극복되기 힘든데다 국제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도 적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무역연구소장은 “이제 상품과 가격 경쟁력 위주의 기존 상품무역 전략에서 탈피, 서비스 무역과 생산요소 무역 등을 아우르는 복합무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세계 무역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간 무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FTA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금탑산업훈장 유수언 신아대표
“저 혼자 받을 상이 아니라 316명의 종업원 주주가 모두 함께 받아야 할 상인데…”
경남 통영시의 중견 조선업체 ㈜신아의 유수언(63) 대표는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29일 이같이 강조했다. 신아는 사실 1991년 국내 조선업계에선 처음으로 종업원 주주회사로 출범한 회사.
지금도 316명의 종업원이 58.8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을 주로 수출하는 이 회사의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25% 이상 증가한 3,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91년 출범 당시 220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1,300%가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신아는 15년전만 해도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던 회사다. 당시 대우그룹의 계열사였던 신아조선은 정부의 조선산업합리화조치에 따라 대우조선과 통합 절차를 밟게 됐다.
한 그룹이 2개의 조선사를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던 것. 그러나 2,000명 가까운 인원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대우조선으로서는 신아조선 직원들을 끌어안을 여유가 없었다. 통합 절차가 그대로 진행될 경우 300여명의 신아조선 직원들은 사실상 모두 해고될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이때 전종업원지주회사로 가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당시 관리담당임원이었던 유 대표다. 그는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 상황을 설명한 뒤 직원들이 힘을 합쳐 퇴직금을 출자, 회사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형식적으로는 신아조선을 대우조선에 통폐합해 폐업 신고를 한 뒤 한자를 바꿔 신아로 새 법인 등록을 했다. 초기 자본금 8억9,000만원은 350명의 직원들이 퇴직금과 위로금(3개월치 월급)으로 받은 돈 가운데 300만~5,000만원 출자해 조성했다.
공장과 부지, 설비 등은 일단 대우그룹으로부터 임대했다. 이 과정에서 신아조선 당시 활동했던 강성 노조는 자연스레 해체됐고 주주총회 겸 사주조합총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자리잡았다. 사장도 여기서 선출한다.
모두가 종업원이면서 주인이 되자 세심한 일처리 하나 하나가 달라졌다. 종업원들은 임금도 동결한 채 허리띠를 졸라맸고 임원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영업에 목숨을 걸었다. 결국 회사는 급성장을 거듭, 97년에는 공장과 부지 및 설비 등에 대한 소유권을 당시 대우로부터 넘겨 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 대표는 핵심 역할을 했다. 78년부터 신아조선에서 일해온 그는 전종업원지주회사를 출범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항구적 산업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2001년 사장에 오른 뒤 1년중 150일은 해외 출장에 할애할 정도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벌였다. 해
병대 시절 유도 대표를 지낼 만큼 튼튼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도 한몫 했다. 신아는 현재 2008년까지 생산할 총 46척(20억6,000만달러)의 배를 수주한 상태다. 유 대표는 그러나 하루빨리 6,000억원의 연매출을 달성, 세계 10대 조선소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회사가 건실하게 성장하자 지난해엔 그린화재 등이 자본 참여를 했고 최근에는 외국계 투자은행 등도 자본 참여 의사를 타진할 정도다.
유 대표는 전종업원지주제를 제안하게 된 이유에 대해 “통영에서 태어나 평생 통영에서 산 나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아조선 종업원의 80% 이상이 통영 사람이었다”며 “이런 기업이 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힘들지만 우리끼리라도 잘해보자’며 사람들을 설득하게 됐고 모두의 노력이 이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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