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는 연구 과정에서 비롯된 논란으로 현재 암초에 걸려 있다. 논란의 핵심은 연구의 출발점이자 원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난자를 제공받는 과정이 국제 윤리 기준에 ‘위배’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 규범의 근거가 ‘헬싱키 선언’이다.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의학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이 선언은 총 3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치료를 포함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연구원 난자 제공 금지에 관한 포괄 규정은 ‘원칙 8’에 담겨 있다.
이 원칙은 ‘경제적, 의학적으로 불리한(disadvantaged) 처지에 있는 피험자가 특히 (실험의 대상이 될) 필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동의서를 승인 또는 거부할 능력이 없거나 강제된 상황에서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속력 없는 문자 그대로 선언
황 교수팀 연구원의 난자 제공 행위는 원칙 8의 규정에 위배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네이처’나 ‘사이언스’로 대표되는 서구 학계는 ‘그렇다’는 입장이다. 그들에 따르면 난자 제공이 자발적이었다 하더라도, 실험실의 위계나 상황으로 보아 일정 부분 강제된(under duress) 상황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서구 학계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지나친 주관적 해석일 뿐이다. 연구원 난자 제공이 강제된 것이라고 추정되려면 그 연구원이 경제적ㆍ의학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거나 혹은 당해 실험과 관련하여 난자 제공의 동의를 거부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의학 실험에서 연구원들의 모든 자발적 참여를 일방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원칙 8의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며 자칫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연구원들이 황 교수를 피해 가명까지 써가면서 난자를 제공한 행위를 ‘동의를 거부할 능력이 없는 강제된 상황’이라고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실험이나 연구에서 공동체적 인식이 거의 없는 서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연구원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일 것이며, 당연히 ‘강제된’ 상황이었거나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화와 관습의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또한 헬싱키 선언처럼 문자 그대로 선언(Declaration)은 국제법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연성법(soft law)이므로 조약이나 협약과 같이 당장에 체약국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향후 입법의 지침이 될 뿐이다.
따라서 구속력 있는 협약이 채택되기 전까지 선언에 대한 해석과 이행은 당해 선언의 정신에 입각한 각국의 국내 입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낙태나 안락사 같은 문제도 아직 국제 공통의 규범을 찾지 못하고 각국의 입장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서구적 시각처럼 연구원 난자 제공을 윤리 규정 위배라고 확언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국가실행이 축적되어 ‘연구원 난자 제공 금지’ 규정이 관습국제법화되거나 아니면 이와 관련된 다자간 국제협약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아직 헬싱키 선언은 그 어떠한 단계에 도달해 있지 않다.
●생명윤리 법규 보강 교훈으로
48년 세계인권선언의 주옥 같은 원칙들도 66년 두 개의 인권규약이 채택되기 전까지는 각국의 입법에 의지하여 효력을 발휘하는 간접적 지침에 불과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한마디로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세상을 바꾸는 창조적 시도는 항상 고난이 따르고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얻은 소중한 교훈에 따라 좀더 신중한 연구와 생명윤리 관련 법규의 보강이 요구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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