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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도청수사와 지역주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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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도청수사와 지역주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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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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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 국가 정보기관에 의한 불법도청 의혹은 소위 안기부 X 파일의 유출로 불거진 이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의 자백과 구속에 뒤이어 국정원장 두 사람이 동시에 구속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언필칭 민주 정부의 최고 정보기관이 수천 명에 달하는 주요 인사들에 대해 불법으로 또 상시로 도청을 해 왔다는 발표는 비단 잠재적으로 도청 피해를 보았으리라고 짐작되는 인사들뿐 아니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민주화투쟁을 이끌어 왔던 두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군사독재 시절과 다름없는 만행이 태연자약하게 반복되고 있었다니 어찌 경악하고 개탄하지 않겠는가.

민주열사들의 피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제도의 존엄성과 국민의 인권이 국가 권력기관에 의해 이처럼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짓밟혀 왔는데 과연 두 대통령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정녕 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YS·DJ 몰랐다고 책임없나

불법도청 지시를 내리고 또 그 결과를 종합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던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은 구속 직전 도청이 “(대통령의) 통치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해졌다고 그 목적을 밝힌 바 있다.

이로써 우리는 두 대통령 재임시절 빈번하게 행해졌던 국회의원 꿔 오기와 꿔 주기, 대통령의 아들 혹은 가신들이 자행했던 불법 통치자금의 수수, 기타 언론인과 정치인과 지식인을 상대로 자행되었던 협박과 회유 등 비열하고 더러운 권력행사가 이처럼 불법으로 수집한 온갖 약점과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했던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대통령의 통치권이 이처럼 비열하고 불법적인 정보정치에 기대어 무소불위로 행사되어 왔는데 과연 두 대통령은 면책의 성역에 머물 수 있는가.

여야 정치권은 하나같이 이 문제의 거론을 회피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원장 구속 이후 격앙된 동교동의 심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루려 하지 않고 현 정권의 책임으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이를 DJ와 호남민심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처럼 불법도청 사건을 민주주의 바로 세우기라는 올바른 관점에서 접근하려 하지 않고 지극히 정략적으로 이를 다루려 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이들의 정략적 계산에 힘입어 이미 소멸한 줄 알았던 3김 정치가 다시 부활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는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교동을 찾아가 문안과 덕담을 경쟁적으로 나누고 돌아왔다. DJ는 YS 정부 도청의 피해자였던 국민의 정부 인사들만을 노무현 정부가 탄압하고 있다고 언명함으로써 은연중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나섰다.

이에 질세라 JP 역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각각 호남당과 영남당으로 규정하는 한편 새로 출범하는 국민중심당에 충청주민이 힘을 실어 줄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상도동에 칩거 중이던 YS 역시 DJ와 대화를 시도하고 오래 만나지 않던 가신을 접견하는 등 부산하다.

●각 정파도 정략적으로 접근

3김 시대 종식을 선언하며 기세등등하게 출범했던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과 발을 맞추어 3김 시대는 이처럼 화려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3김의 공모와 담합에 의해 자행되었던 인권 유린과 권력 남용의 책임 소재를 끝까지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어느 정파도 보이지 않고 있다.

3김 정치와 지역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정치권이 또다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불운한 그러나 심약한 권력 하수인의 자살은 정치권의 이와 같은 시도에 아주 적절한 핑계가 되어 주고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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