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갓 개국한 CBS FM(93.9㎒)의 간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타 방송사와 차별화하는 프로를 만들고 싶다고.” 재즈 색소폰 주자 이정식(45)씨가 10년 전 일을 돌이켰다.
그렇게 해서 그 해 12월15일 국내 최초의 재즈 방송프로그램 ‘0시의 재즈’가 탄생했다. 밤 12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되는 이 프로는 이후 ‘이정식의 올 댓 재즈’로 간판을 바꾸어 척박한 우리 대중문화의 토양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일을 10년 째 해오고 있다. 이 방송은 최장수이자, 지상파 유일의 매일 방송 재즈 프로그램이다.
곽윤찬, 나윤선 등 현재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재즈 뮤지션들이 이 프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또 프로그램 이름으로 9종의 음반을 발표, 재즈의 이름으로 제3세계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렸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재즈 편식증에 걸려 있던 한국 팬들에게는 시각을 깨우치는 죽비나 다름 없었다.
이 프로의 방송 10년 기록은 재즈란 음악이 단순히 대중문화 산업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1990년대 느닷없이 한국에서 재즈열풍이 일면서 재즈 이름을 걸친 방송 프로, 잡지, 무가지 등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머잖아 광고가 붙지 않는다는 등의 현실적 이유로 거의 모두 쇠잔해 갔다.
재즈평론가 김현준씨는 이 프로를 가리켜 “관조의 시선으로, FM 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반응이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4년 프로그램 개편 당시 새벽 2시로 밀려나면서 시간도 1시간 줄어들었고, 방송국 내부에서 존폐론이 심각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 9월 가을 개편에서 가까스로 원래의 모습으로 부활한 이 프로는 지금 변신을 모색중이다. 가을부터 프로제작을 책임지고 있는 정우식(32) PD는 적극적으로 재즈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욕심이다. 골수 재즈 팬보다는 ‘소극적 마니아’에 프로의 성격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퓨전의 비중을 정통 재즈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든가, R&B나 소울 등 인접 장르까지 적극 포섭하는 등의 변화가 그것이다. 장르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포스트모던 재즈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면서, 청취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또 재즈 클럽 운영자나 재즈에 관심 있는 기업체의 후원을 유도, 다양한 형태의 라이브 무대도 선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10주년 일인 12월15일에 맞춰 10번째 음반 ‘언제나 재즈처럼’도 발매할 예정이다. 국내 최고의 재즈 음악인으로 꼽히는 진행자 이정식씨는 현재 수원여대 대중음악과 학과장도 맡고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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