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사과 기자회견으로 막을 내린 ‘난자파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번 파문으로 숨가쁘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걸맞은 대응을 하지 못한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의 허점이 여지 없이 노출됐다. 선진국이었다면 제도적으로 걸러졌을 문제가 법과 지침의 부재, 무지, 거짓해명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지만“배아연구는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다”거나 “MBC 보도는 국익 손상”이라는 양극단의 논리는 소모적이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개인의 문제를 떠나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꼭 짚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리지침 임상실험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무척 심각하게 보고있다.
한 연구자는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한 실험이나 임상실험을 시작하기 앞서 실험의 절차와 규칙(프로토콜)을 먼저 정해 기관윤리위원회(IRB)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외국에 비해 국내는 상당히 형식적”이라고 실상을 밝혔다.
한양대병원 IRB 심사과정은 단적인 예다. 기자회견과 ‘PD수첩’ 등을 통해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실제 난자를 채취한 미즈메디병원은 아예 IRB가 없었고 ▦한양대병원 IRB는 실사 없이 “문제 없다”는 연구참여자의 발언만 참고했다.
한 IRB 위원은 “(보상금 지급을) 알았다면 (심의통과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형식적 제도를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도록 할 것인 지가 숙제다.
실험실 정서 서울대 수의대 IRB는 24일 “순수한 기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를 언급했다. 휴일도 없이 희생적으로 일하는 연구실 분위기가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윤리지침이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분위기가 열성적일수록 상관의 암묵적 요구와 자발적 헌신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험실은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밀실이며 도제적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이다.
대학에서는 아직도 실적을 위해 참여하지도 않은 연구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관행’으로 여겨진다. 10월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도 ‘생명과학연구자 윤리헌장’을 제정하며 연구계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객관적 평가, 민주적 절차, 투명성 확보 등을 천명한 바 있다.
정부의 관리 또 다른 문제는 정부의 관리 부재다. 문제가 터졌는데도 보건복지부 생명윤리 담당자는 “우리가 왜 진상조사를 해야 하나”고 반문했고 과학기술부는 “진상조사 계획이 없다”는 해명자료를 내기에 바빴다. ‘어떻게 감히’라는 분위기다.
10월 세계줄기세포허브 개관 때 과기부는 “발표 시점도, 소관부처도 밝힐 수 없다”며 내놓지도 않은 보도자료에 보도제한을 요청하는 기이한 행동까지 했다.
청와대의 지대한 관심 속에 황 교수의 연구는 부처의 관리시스템이 감히 손댈 수 없는 성역이 돼 버렸다. 애당초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잃었던 셈이다.
엄격한 관리지침이 운용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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