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정말 추워졌다. 엊그제가 수능 시험일이었으니, 입시 때를 지나며 으레 추워지는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지난 주말에는 합천에 다녀왔다. 해인사를 찾아 한 해의 안녕을 감사하고 오겠노라는 부푼 뜻이 있었지만, 날은 너무 추웠다. 밤새 달려 도착한 가야 산자락에서 숙소를 정해 들고, 온돌이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뉘여 아침까지 쉴 수밖에 없었는데. 아침 추위는 이보다 한 술 더 떠서, 세수하러 움직이기조차 으스스한 산 공기에 도시 사람은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
겨우 채비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와 밥집을 찾는데, ‘능이버섯’ 메뉴를 내건 식당이 보였다. “일(一) 능이, 이(二) 송이, 삼(三) 표고”라며, 능이버섯 이름만 들어도 입맛을 다시는 남편은 주저 않고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군불이 남은 방 한 칸의 밥집에 두 발을 모으고 앉아 능이버섯 국을 기다리자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호박전을 내 주셨다. 불그죽죽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을 잘게 채 쳐서 부쳐낸 것이었는데, 그 향그런 냄새가 일품이었다.
이어 나온 능이버섯국은 흙을 머금은 고기 같기도, 우유 같기도 한 오묘한 맛이었는고, 한 참을 떠먹다보니 몸이 따뜻해졌다. 냉증과 감기에 좋다는 늙은 호박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혈행을 돕는 능이버섯으로 뱃속을 채우고 나니 손끝 발끝까지 짱짱하게 기가 뻗치기 시작했다.
● 속부터 따뜻하게
올 겨울에는 ‘러시안 무드’가 유행이다. 그 유행은 특히 패션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복슬복슬한 털이 압권인 코트며 장갑, 안나 카레리나가 썼을 법한 탐스러운 모자 등을 필두로 백이며 부츠 등 온통 따뜻해 보이는 룩이 대세다. 사실 겨울철에 가장 멋져 보이는 스타일은 따뜻해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다.
아무리 섹시한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어봤자 추워 보이면 스타일이 안 산다. 따뜻해 보일수록 여유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있어 보이게’ 연출하는 데에도 러시안 스타일은 한 몫을 한다. 그런데 잠깐, 털 코트나 털모자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따뜻하게 데운 ‘속’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멋진 설원을 찾아 제작한 패션 화보를 예로 보면, 윤기가 자르르한 의상을 입은 모델이 여전히 추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창백한 두 뺨과 힘없는 입술로는 여유로워 보이는 겨울 의상들의 ‘필(feel)'을 제대로 살리기가 힘들다. 뱃속을 데워주는 식재료를 몇 가지 알고 찾아먹는 지혜로, 눈처럼 하얀 털모자에 어울리는 윤기 나는 피부며 혈색 좋은 눈빛을 얻을 수 있을 테니 귀 기울여 보자.
한방에서 몸의 보온에 최고로 쳐주는 황기나 대추. 두 가지 재료를 뭉근히 끓여 차처럼 마시면 겨우내 추위 걱정은 끝이다. 대추를 채쳐 두었다가 고기반찬 위에 단 맛을 내는 고명으로 얹으면 소화에도 좋다.
밥을 지을 때 대추나 밤을 섞어 넣은 간단 영양밥도 몸을 데울 수 있고. 그 이름 듣기만 해도 땀이 날 것만 같은 계피나 생강도 대표적인 겨울 식재료다. 단단한 토종 배를 파내어 꿀을 붓고 계피와 생강을 넣어 달여 먹거나, 프랑스 사람들이 겨울 동안 와인에 계피를 넣어 약 불에 우려먹는 경우가 다 몸에 열을 내기 위함이다.
여자 몸에 좋은 들깨도 한 몫을 하는데, 가루로 내어 부엌 한 견에 두었다가 매콤하게 양념한 순대 볶음에, 고소한 우유에 두루 이용하면 좋다. 보양식으로 불리는 미꾸라지나 오리 고기도 몸을 데워주는 대표적인 식재료로, 오리 고기를 잘게 다져 쑤어낸 죽이나 북경 오리 등을 먹을 수 있다면 한 겨울을 덜 춥게 보낼 수 있겠고 추어탕이나 미꾸라지 숙회에 소주 한잔 곁들인다면 움츠렸던 몸이 풀릴 것이다.
● 멕시코 요리
프랑스의 옛말에 “네가 먹는 것을 내게 말해보렴. 네가 누군지 내가 말해줄 테니”라는 구절이 있다. 먹는 것에 대한 성향이 곧 그 사람을 반영한다는, 기가 막히게 무섭고도 일리 있는 말이다. 그래서 흔히들, 그 나라의 음식을 보면 국민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들 하지 않나.
뭐든지 넉넉히 담고 요리 과정 하나 하나 정성이 가득한 우리 음식을 보면 본디 ‘착한’ 한국민의 본성이 나오고, ‘육해공’의 재료를 후려쳐서 큰 상을 가득 메우는 중국 음식을 보면 시야가 넓은 그들의 상황적 특성이 비춰진다.
가식 없고 정열적인 멕시코 영화들이나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 등을 통해 내게 비춰진 멕시코 인들의 성향은 뜨겁다. 그들의 색감이나 복식 등을 보게 되면 그 뜨끈함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들의 음식을 맛보기로 하자.
옥수수 가루를 많이 먹고, 할라페뇨라 불리는 매운 고추를 자주 섞어 넣는 그들의 요리는 솔직하고 후끈하다. 아보카도와 고추를 섞어 만든 구아카몰레에 옥수수로 만든 또띠야 칩을 찍어 먹든, 갖은 색의 고추와 맵게 볶아낸 고기 한 접시를 밀전병에 싸 먹든 맵고 煞甄?
그래서 시원한 맥주나 라임을 짜 넣은 데킬라 칵테일로 정리를 해주어야 더욱 맛이 산다. 멕시칸 요리처럼 정열적인 국민성을 만드는 메뉴를 찾아 이국적인 뜨거움을 맛보는 것도 춥고 긴 겨울을 보내는 재미가 되겠다.
닥터 지바고의 나나처럼 설원을 달리면서도 두 볼의 홍조를 띄우고 싶다면? 방법은 단 두 가지, 예서 말한 뜨끈한 요리들로 속을 데워 주거나 사랑에 흠뻑 빠져야 할 것이라는 말씀!
▲ 소고기 칠리 볶음
소고기 150그램, 양파 1/3개, 파프리카 1개, 청 고추 1개, 살사소스(토마토소스 + 칠리소스) 2~3큰 술, 소금, 후추.
1.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다.
2. 1에 양파, 파프리카를 볶다가 길게 썬 고추와 소고기를 넣고 소금, 후추로 밑간 한다.
3. 2에 살사 소스를 넣고 바짝 볶는다.
▲ 구아카몰레
아보카도 1개, 양파 1/2개, 할라페뇨(혹은 청양고추) 1~2개, 라임 약간, 사우어 크림 3큰 술, 소금, 후추.
1. 아보카도는 속을 파내어 곱게 으깬다.
2. 고추와 양파는 잘게 다진다.
3. 1과 2를 볼에 섞고 사우어 크림을 넣어 잘 버무린다.
4. 3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라임즙을 뿌린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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