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성(性) 문제는 영원한 터부다.
모두가 하고 있고 알고 있지만 밖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다.
표현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인들이 힘겨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인터넷에 성기가 노출된 알몸 사진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7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벌금 500만원)을 받은 김인규(43) 충남 서천 애니메이션고 교사와 한국 사회 성담론의 중심에 항상 서 있던 마광수(54)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만났다.
‘유죄 교사 김인규와 죄없는 친구들’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홍익대 앞 갤러리 ‘꽃’에서 22일 밤 대담이 열렸다.
마 교수는 한국을 ‘촌티와 심통’의 사회로 규정했다. 마 교수는 8월 MBC 100분 토론에 나가 “여자가 안 예쁜 것은 게으른 것”이라고 말했다가 한 네티즌으로부터 “사형시켜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마 교수는 “누군가 ‘튀는’ 사람이 있으면 ‘해코지’ 하려고 하는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라며 “상상력을 동원한 성적 표현을 현실과 동일시 하는 법원과 일부 보수단체는 문화적으로 촌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 교수는 “90년대 초반 내 작품에서 처음 언급된 사조ㆍ마조히즘 스와핑 패티시즘 관음증 등 당시 ‘변태’로 불렸던 일들이 오늘날 그대로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며 “단언하건대 100년 뒤 우리 사회는 오늘날 변태라고 불리는 성행위가 정상이 되고, 지금의 정상이 변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사도 “예술가이기에 앞서 교사라는 입장에서 인터넷에 띄운 알몸 사진을 철회할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그 과정이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합리적인 의사소통 없이 검찰이라는 공권력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철회를 거부했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마 교수의 입장에 동의했다.
김 교사는 “알몸 사진은 문제가 불거지기 훨씬 이전인 96년 오프라인 전시회에 이미 전시됐던 작품”이라며 “검찰에 시달린 후 지독한 내부검열을 하게 돼 이후 작품 활동이 완전히 뒤죽박죽 됐다”고 밝혔다.
마 교수와 김 교사는 성적 표현을 예술에 차용하는 동기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드러냈다.
마 교수는 “고교 문학교과서에는 예술의 본질인 카타르시스를 ‘정화(淨化)’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대리 배설’이라고 정의한다”며 “내 작품에 드러나는 모든 구체적인 성행위는 현실에서 실제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행하는 것이며 이를 읽고 독자가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 교수는 “영국의 로렌스가 쓴 ‘채털리부인의 사랑’ 등 외국 성문학은 추종하면서 우리만의 성담론은 없어 ‘국산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교사는 “자본주의 하에서 우리 사회는 상품을 좀 더 많이 팔기 위해 성욕을 이용하고 성을 미화하고 환상적으로 그린다”며 “내가 드러내는 성은 ‘불편하고 장애가 있는 성’으로 성 상품화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또 “성 상품화와 반대로 성 자체를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무조건 억압하려는 관점도 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성을 드러내 이런 관점에 저항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밝혔다.
대담을 마치며 향후 계획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마 교수는 “변태는 창조의 아버지”라며 “계속 야하겠다”라는 말을, 김 교사는 “홈페이지 등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과 성담론을 자유롭게 나누는 마 교수를 계속 부러워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마 교수는 1992년 출판한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형법상 ‘음화(淫畵) 등의 제조ㆍ반포’ 조항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같은 해 구속됐다.
95년 대법원에 의해 “문학적 표현의 자유도 헌법 21조4항 ‘언론ㆍ출판은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내용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 교사는 2000년 9월 충남 서천 비인중 미술교사 시절 알몸 및 성기노출 사진을 자기 홈페이지에 실었다가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7월 대법원이 마 교수의 판례를 들어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에 파기 환송했다.
신기해 기자 shinkh@hk.co.kr
■ "성적 표현 규제 초보적 논의만 반복"
이날 대담이 열린 20평 남짓한 갤러리 ‘꽃’의 지하 공간에는 5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 스포츠신문에 성(性)코믹 칼럼 ‘에로비안나이트’를 연재하고 있는 김재화(52)씨는 “나도 한 기독교단체의 고발을 받아 검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적 있다”며 “이후 자기검열에 빠져 제대로 된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두 분은 어떻게 이를 극복했나”고 물었다.
한 여성 방청객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적 표현을 정치적인 의도로만 해석해 규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초보적 단계의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며 “이제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신장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교수님은 직접 ‘즐거운 사라’의 내용처럼 여제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냐”는 사회자 반이정(미술평론가)씨의 공격적인 질문에 마 교수가 “다른 교수들도 많이 해. 그래서 결혼도 많이 하고”라고 말하자 갤러리 전체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갤러리 벽에는 나체의 여자들이 체조를 하는 동영상, 성기를 드러내 놓고 기타를 치고 있는 남자의 사진 등이 자유롭게 전시돼 있다.
신기해 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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