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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발해 왕자로 변신한 '무영검' 주연 이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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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발해 왕자로 변신한 '무영검' 주연 이서진

입력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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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을 통한 이서진(32)의 얼굴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택시를 8년 몰다 불귀의 객이 되는 기사(공포택시ㆍ2000)나 엇갈린 사랑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내(아이 러브 유ㆍ2001)로 그가 이미 스크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웬만한 영화광이 아니라면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낯설다.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면서도 또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그에게 18일 개봉한 ‘무영검’은 크나큰 도전이다. 8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제작한 미국의 뉴라인시네마가 24억원을 투자하고 미국을 비롯한 60개 국가에서 개봉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출연작 들이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앞으로 영화 못하면 어떡하나 겁도 났어요. 드라마 ‘불새’ 촬영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하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대작이라 부담도 되었지만 그만큼 매력을 느껴 출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발해의 마지막 왕자로 거란의 척살단을 피해 왕조를 다시 일으키는 대정현. 제위를 둘러싼 음해로 왕실에서 쫓겨난 그는 장물을 거래하며 도피 생활을 영위한다. 발해 유민들이 그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파견한 여성 호위무사 연소하(윤소이)와 야릇한 감정을 주고 받으며 왕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간다.

그는 대정현이 몸에 착 붙는 옷처럼 자기 성격과 잘 맞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제가 무협소설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국내에서는 인정 받지 못하는 무협영화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도 했고요. 무엇보다 밑바닥 인생으로 살다가 자아를 찾아 왕이 되어가는 역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을 베고 찌르는 전통 검술영화에 덧붙여 현대적인 액션까지 우직하게 내지르는 ‘무영검’에서 그는 쉴 틈 없이 고난도의 와이어 액션을 연기했다. TV드라마 ‘다모’에 출연하며 배운 무술이 많이 도움 됐지만, 대부분 장면을 온몸으로 치러내다 보니 아직도 멍과 상처가 몸 곳곳에 선연히 남아있다.

해발 3,400m의 중국 고지대 리장에서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아내며 척살단 대장인 군화평(신현준)과 일합(一合)을 겨루는 장면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감독님이 제 액션연기에 믿음이 강하셨어요. 대역도 안 쓰고 합(合)도 길게 처리하고요. 사실 육체보다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적지 않은 정신적 부담과 육체적 고통이 수반된 작업임에도 그는 영화 촬영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짬만 나면 김영준 감독, 신현준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죽이 맞은 세 사람은 스태프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에피소드까지 만들었다. “점심 먹다가 5시간 내리 서로 좋아하는 감독과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촬영장으로 돌아간 스태프들은 감독과 주연배우가 실종되었다고 난리가 났죠. 저녁때 혹시나 해서 식당을 찾은 뒤에야 우리를 발견했어요.”

이서진은 국내 개봉했거나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는 거의 다 본다는, 못 말리는 영화광이다. 좋아하는 감독을 말해달라는 요구에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할 수 없다”고 답변할 정도다.

모든 영화광이 그렇듯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으련만 그는 손을 내젓는다. “연출은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배우로서 자리도 확고히 잡지 못했고요. ‘무영검’을 통해 이제는 영화배우로 보인다는 주위의 칭찬이 그저 좋을 뿐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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