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비준안 통과로 국내 소비자들은 내년 3월부터 동네 슈퍼나 할인점에서 중국이나 미국 쌀을 사먹을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지난해 쌀 협상에서 쌀 시장 전면 개방을 10년간 유예 받는 대신, 외국 쌀 의무수입 물량의 10~30%에 대해 소비자 시판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수입 쌀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시기는 ‘구매 입찰’에서 ‘현지 가공’ 및 ‘수송과 통관’ 등에 필요한 기간을 감안할 경우, 정부가 아무리 서둘러도 내년 3월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수입 쌀 가격은 국내 쌀의 95%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가격으론 중국과 미국 쌀이 한국 쌀의 2분의1이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판가격은 정부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낮은 가격에 수입한 외국 쌀을 그대로 방출하지 않고, 소비자 가격이 국내 쌀과 엇비슷한 수준이 되도록 적절한 유통마진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외국 쌀이 국내 쌀보다 더 비싸게 팔리도록 유통마진을 붙일 수는 없다”고 밝혀, 외국 쌀의 소비자 가격이 국산의 95% 안팎에서 정해질 것임을 내비쳤다.
외국 쌀은 ‘미국 캘리포니아 칼로스’ 등 현지 브랜드를 그대로 부착한 형태로 판매될 전망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가공용 쌀은 현미로 수입돼 국내에서 가공되지만, 소비자 시판용 쌀은 중국 미국 등 현지에서 직접 포장한 쌀을 팔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외국 쌀 수출업자들의 국내 판촉활동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을 방침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 미국 등의 수출업체가
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신문이나 TV를 통해 광고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서울 강남 등 부유층을 겨냥해 ‘세계에서 가장 비싸면서 품질은 최고’라는 일본 쌀이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내년에 쿼터를 배정 받지 않은 미국과 중국 이외 지역에서 최대 5만톤까지 수입이 가능한데, 일본 농민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저가 입찰 방식으로 국내 진출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도시 소비자들이 맛과 품질이 다양한 수입 쌀을 기존 가격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만큼 일정 부분 농민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권이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준안 처리를 너무 늦춰, 올해 수입해야 할 22만톤을 내년에 수입할 수 밖에 없어 쌀값의 큰 폭 하락이 우려된다.
농림부 관계자는 “수출국과의 추가 협상에서 올해 미수입 물량을 단계적으로 수입한다는 양해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내년 수입물량은 2005년과 2006년 물량을 합한 47만톤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47만톤은 2014년의 의무수입 물량 40만8,700톤보다도 7만톤이 많은 규모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분석자료를 통해 2014년에 40만톤이 수입될 경우 쌀 80㎏ 한 가마 가격이 12만7,00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던 것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내년 가을 추수기 쌀값이 12만원 선으로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곡수매제 폐지로 지난해 16만3,000원이던 쌀값이 올해 14만5,000원까지 하락했던 것을 경험한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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