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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나의 결혼 원정기 "농촌 총각 우즈벡에서 '짚신 짝'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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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나의 결혼 원정기 "농촌 총각 우즈벡에서 '짚신 짝' 만나다"

입력
200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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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서른 여덟. 특별히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면 결혼은 물론이고 애가 한 둘은 있을 만한 나이다. 그러나 그 남자의 거주지가 농촌이라면? 요즘 현실에서는 십중팔구 속절없이 한숨만 내쉬는 노총각이기 십상이다. 농촌에서는 너무 흔한 노총각. ‘나의 결혼 원정기’의 농촌총각 만택(정재영)도 예외는 아니다.

몽정으로 얼룩진 팬티를 몰래 빨아 입어야 하고 “장가 좀 가라”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청구를 견뎌내야 하는 그의 일상은 지지리도 궁상맞다. 비슷한 처지의 불알친구 희철(유준상)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그렇다고 삶의 군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만택은 남루한 노총각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감행한다.

하지만 넉살 좋은 희철과 달리 여자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만택의 결혼 원정은 험난하기만 할뿐. 성혼비를 챙겨야 하는 결혼알선업체 사장은 안달을 하고, 만택의 통역과 맞선을 담당하고 있는 라라(수애)는 입장이 자꾸 곤란해진다. 여자들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곤욕을 치르는 만택은 자신을 몰아세우는 라라에게 오히려 마음이 끌린다.

농촌 총각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영화는 비루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는 않는다. 부조리한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는 대신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별천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를 마치 판타지처럼 전개한다.

그래도 카메라가 온전히 사회적 문제를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우리의 농촌 뿐만 아니라 탈북자 문제, 국제 결혼의 부작용 등을 스크린에 차분히 녹여낸다. 감독은 미래 신부감을 타국 농촌 총각에게 빼앗기는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무력감을 통해 우리 농촌의 피폐함을 상기시키는 식의 간접화법으로 현실을 에둘러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경북 예천의 맛깔스러운 사투리로 포장한 정겨운 유머 등을 통해 대중영화로서의 재미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숙맥 농촌 총각 만택과 탈북자 신분의 라라가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투박하면서 상투적이지만 의외로 가슴을 울린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꼼꼼한 마름질의 연출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빠질 수 있는 값싼 감상(感傷)의 함정을 메운다. 여기에 어수룩한 정재영과 능글맞은 유준상의 연기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힘을 보탠다.

황병국 감독의 데뷔작으로 2001년 1월 KBS1 TV에서 방영된 인간극장 ‘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기본얼개로 삼았다. 올해 부산영화제 폐막작. 23일 개봉. 12세

■ 우후죽순 실화영화에 흥행 성공하려면… 사실성에 '재미'양념 있어야

충무로는 실화(實話)와 열애 중이다. 현실이 더 영화적이라는 말이 있듯, 잘 골라진 실화는 탄탄한 인과관계에 극적 요소까지 갖추고 있어 일단 '기본'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10ㆍ26사건을 다룬 '그 때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의 범상치 않은 실제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 개봉한 작품은 올들어 6편이나 된다. '말아톤'과 '너는 내 운명', '주먹이 운다' '엄마' '거칠마루' '안녕, 형아' 등이다.

실화 소재 영화의 대부분은 TV 휴먼 다큐멘터리 등에서 얻어진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충칭의 별 이장수' '맨발의 기봉이' '친구와 하모니카'도 TV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평론가 이명희씨는 "영화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감동"이라며 "감독들이 실화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화 소재 영화가 감동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흥행까지 보장 받기는 힘들다. '말아톤'이 518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반기 흥행 1위를 내달리고, '너는 내 운명'이 307만 명을 끌어 모아 역대 멜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쓴 반면, 나머지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초라하다.

'말아톤'이나 '너는 내 운명'이 실화를 뼈대로 뚝심 있게 이야기를 전개해간 데 비해, '엄마'는 지나치게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실화의 최대 강점인 사실성을 놓쳤고, '주먹이 운다'는 두 사람의 이질적인 이야기를 한데 모아 시선이 분산 되었다는 것이 충무로의 평가다. 소재 선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관객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화가 주는 사실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도 관객을 식상케 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실화가 기본적으로 좋은 이야기 틀을 제공하지만 흥행 보증수표는 아니다"라며 "픽션과 사실이 적절히 섞여 영화적 재미를 줘야만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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