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도 한국어와 같은 존대법이 있을까. 상대를 모두 You로 통칭하는 영어와는 달리 독일어에는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상대를 ‘너’ 혹은 ‘당신’으로 구별해서 호칭하는 소위 ‘너체’와 ‘당신체’가 있다. 상대가 내게 ‘너’로 규정되는가, 아니면 ‘당신’으로 규정되는가에 따라 구분되는 이 두 어법에선, 주어에 따라 동사 형태까지 변화한다.
그런 점에서 독일어의 이 어법은 ‘너 밥 먹었니’와 ‘아버지 진지 드셨습니까’를 구분하는 우리말의 존대법에 상응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와 독일어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독일어 어법에서는 ‘너’ 혹은 ‘당신’이라는 호칭이 전적으로 상대와의 친밀도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나이 많은 어른이나 지위가 높은 상대에게 당연히 존댓말을 하는 한국어식 존대법에 익숙해 있던 내겐 유학 초기, 노(老)교수와 젊은 학생이 서로 ‘너체’로 대화하는 모습은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독일 대학교수들이 학과의 비서들과 서로 ‘너체’로 말을 하는 건 그들의 개방적 성향 탓이라 생각했었지만,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긴 학생이 나이 많은 교수와 서로 ‘너’라고 부르며 대화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독일어식 존대법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독일에선 노인들도 친한 청소년들과 서로 ‘너’라고 부르며, 사장과 직원이 지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너체’로 말을 나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인과 사위가 한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너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상대를 ‘당신’이라 부르는 ‘당신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공식적 관계에 사용되는 공식 어법이라면, ‘너체’는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을 나이나 지위, 신분과는 무관하게 서로 동등한 대화 상대자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동료 어법이다.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생물학적 연령, 지위나 신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맡는 사회적 역할과 임무, 개인의 능력 등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오늘날과 같은 유동적 사회에서는 이런 독일어식 존대법이 좋은 점이 있다.
나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이미 이전부터 서로 ‘너체’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에게는, 자기 후배 혹은 어린 사람이 상사로 부임하거나 낮은 위치에 있던 이가 갑자기 높은 지위로 오르는 등의 변화가 생겨도 그로 인해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남시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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