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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의 힘 보여준 밥 포시의 뮤지컬 '피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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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의 힘 보여준 밥 포시의 뮤지컬 '피핀'

입력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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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밥 포시의 뮤지컬 ‘피핀’은 무명(無名)으로 무대를 장식하는 앙상블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공연이다.

한 청년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 극의 외형상 주인공은 9세기 프랑크 왕국의 왕자 피핀. 성(性)에 탐닉하고 혁명의 열정에 빠져 들다가도 금세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는 우유부단한 청년 피핀의 행동이 극의 무게 중심을 잡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16명의 앙상블이다.

엉덩이와 허리를 실룩거리고 팔과 다리를 안쪽으로 모았다가 바깥으로 펼치는 앙상블의 몸짓은 그 어떤 배역의 얼굴보다 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들은 단순히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고 주인공의 연기를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무대를 장악한다. 지극히 관능적이면서도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듯한 밥 포시 특유의 춤으로, 때론 권력의 화려함 뒤에 숨은 인생의 무력감을 표현하고, 난잡한 성 관계와 혁명의 허무함을 드러내거나 풍자한다.

커튼콜 때 펼쳐지는 군무는 극 중 앙상블의 중요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10분간 펼쳐지는 춤의 마지막 향연만으로도 공연은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해낸다.

극 중 극 형태의 공연을 이끄는 리딩 플레이어(Leading Playerㆍ임춘길)도 또 다른 숨은 주인공이다. 무대 위에서 그는 연출가나 작가처럼 극을 지휘하고, 관객들에게는 무대와의 거리감을 유지시켜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밥 포시의 현신(現身)처럼 ‘인생 뭐 별거 있겠어? 하지만 내 말이 정답도 아니지’라는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현현하게 전달한다.

피핀의 할머니 버싸 역을 맡아 단 한 장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윤복희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인생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풀어내는 대가의 연기는 ‘피핀’이 던져주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연출 한진섭, 안무 서병구. 피핀 역은 서재경과 최성원이 번갈아 맡는다. 공연은 내년 1월15일까지. (02)501-7888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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