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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엉뚱한 풀뿌리 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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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엉뚱한 풀뿌리 대연정

입력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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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10ㆍ26 재선거 참패의 원인 중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추진일 것이다. 호남과 개혁세력 등 노무현 정부의 지지세력 중 상당수는 이에 배신감을 느껴 등을 돌렸다. 일반 서민들도 날로 심화하는 양극화로 어려워지고 있는 “서민들의 민생이나 챙기지 대통령이 쓸데없는 일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얼마 전 한국일보가 한 여론조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 중 84%가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경제 살리기라고 대답한 반면 대연정 추진이라고 답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대연정론을 비롯한 노 대통령의 국정 구상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깊은 뜻’을 따르려는 듯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연정이 실현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이다.

국회는 기초의원 선거에 있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소수 정당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중ㆍ대선거제를 도입하기로 선거제도를 바꿨는데 다만 기초의원을 5인 이상 뽑는 선거구는 필요할 경우 분할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우-한 기초의원 나눠먹기

그런데 지난 6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이를 ‘2~4인 선거구로 임의분할’로 바꾸는 한편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은 광역시와 도의회가 구성하는 선거구획정위로 위임하는 것으로 그 규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와 부산시, 경기도가 대부분의 선거구를 4인 선거구가 아니라 2인 선거구로 분할한 선거구 획정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 후보들의 동반 당선이 이루어져 엉뚱한 ‘풀뿌리 대연정’이 이루어지는 반면 민주노동당, 민주당 같은 군소 정당들은 의석차지가 어려워져 중ㆍ대선거제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진다.

쉽게 말해 군소 정당들을 왕따시키는 대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한 석씩 나눠 먹어 기초의회를 싹쓸이를 하도록 선거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선거구획정위가 이처럼 한심한 2인 선거구안을 만든 이유이다. 서울의 경우 열린우리당 서울시당이 획정위에 선거구를 최대한 나눠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로비를 벌였다. 서울시당이 노 대통령의 대연정을 지방자치의 1번지인 서울의 풀뿌리 정치의 수준에서라도 실현하기 위해 총대를 멘 것인가?

그리고 로비 덕인지 그 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영향을 받겠지만 그래도 시민단체로부터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획정위 위원들이 양식이 있지 양당의 압력 때문에 이같이 한심한 안을 내놓았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이 고명한 사회적 명사 분들이니 만큼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의 깊은 뜻에 감명을 받고 음지에서라도 이를 돕기 위한 ‘숭고한 애국심(?)’에서 2인 선거구안을 내놓았다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엉뚱한 애국심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인천시의회는 한 술 더 떠 획정위가 선거구의 절반은 2인, 나머지 반은 3, 4인 선거구로 나누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2인 선거구를 대폭 늘리려 하고 있다.

●대연정 유령 사방에서 출몰

대연정이 풀뿌리 정치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막판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제동으로 일단 본회의 통과는 유보됐지만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경호권까지 발동해 쌀 시장 개방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의 논거로 제시했듯이 두 당의 차이는 별로 없고 정책 면에서 사실상 대연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과 10ㆍ26 재선거로 대연정론은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대연정은 버젓이 살아 실현되고 있고 대연정의 유령은 사방에서 출몰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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