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 앞에 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명자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지난 18년 동안 FRB를 이끌어온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통화정책을 이어가겠다. 특히 일체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FRB를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이며,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대중의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겠다.” 금융위원회는 그의 인준안을 19대1로 가결해 상원 전체회의에 넘겼다.
반대표는 그가 FRB 이사로 일할 때‘그린스펀의 고무도장’역할을 했다고 비난했으나, 이로써 내년 2월 그의 14대 FRB 의장 취임은 기정사실화했다.
▦그린스펀은 능구렁이 같은 화법과 처세술, 이론과 실물경제를 두루 섭렵한 식견으로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 등 4개 정권에서 절대적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전임자인 폴 볼커와 함께 ‘역대 최고의 FRB 의장’자리를 다투는 그도 말년에 부동산 거품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과오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장 신뢰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올 6월 백악관 경제자문위 의장에 임명되기 전만 해도 ‘하버드 출신의 천재 경제학자’정도로 알려졌던 버냉키로선 이 같은 신뢰가 ‘후광’이면서 동시에 ‘업보’다. 월스트리트가 그린스펀을‘선택된 인물(Chosen Man)’, 버냉키를‘보통사람(Everyman)’이라고 칭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버냉키는 인준청문회에서 자신이 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를 잘 보여줬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 안정이 FRB의 존재이유이고, 이를 위해 모든 내ㆍ외부 압력을 배척하겠다는 단호한 소신을 피력한 것이다. 그린스펀 18년 권세의 힘이‘중앙은행의 독립성 확보’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모호성을 시장관리의 무기로 삼았던 그린스펀과 달리,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 역시 향후 FRB의 변화와 관련해 주목된다. 지금은 한발 물러섰지만 평소 지론인‘인플레 목표제’를 어떻게 구현할 지도 관심이다.
▦한국은행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국회동의를 얻어 한은총재를 임명하고, 총재와 금융통화위원 임기를 대통령과 같이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으로 한은법 개정이 추진된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입법의 배경은 "참여정부 들어 한은과 재정경제부의 통화신용정책 엇박자로 시장 불안이 빈번하게 초래돼 한은의 정책적 중립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지가 왠지 초라해보이긴 하지만 FRB 의장 교체기의 논점을 잘 살피면서 한번쯤은 검토할 만한 제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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