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의 죽음은 정점을 향해 치닫던 도청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선 도청 묵인 및 지시 혐의로 구속된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의 공소유지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씨는 두 전 원장의 재임시절 차장을 지낸 세 명 중 한 사람으로 이미 구속 기소된 김은성씨를 제외하면 유일한 생존자였다. 김씨의 전임자인 엄익준씨는 도청 수사가 시작되기 전인 2000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두 전 원장이 도청 연루 여부를 강하게 부인하는 상황에서 이미 국정원 도청 전모를 검찰에서 자백한 유일한 생존자 김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검찰은 궁지에 몰릴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중간 간부급 직원들의 진술과 감청장비 활용자료 등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어서 이씨의 죽음이 공소유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국정원 조직체계상 원장에게 도청 내용을 직접 보고하는 위치에 있는 차장의 진술은 국정원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증언일 수 밖에 없다.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폭로한 국정원 도청문건의 유출 경위 수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출된 문건은 이씨 재직 시절 도청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씨를 다시 부를 계획이 없었다. 필요한 진술은 이미 다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건을 폭로했던 한나라당 김영일, 이부영 전 의원 소환은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가 정치권의 강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구 여권으로부터 ‘DJ 죽이기’,‘짜맞추기 수사’ 등의 공격을 받아온 터라 검찰 수사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변호인단은 “이씨가 신씨가 구속되기 전에 전화를 걸어 ‘진실과 다르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심경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대검이 곧바로 진상규명조사단을 꾸린 것도 이런 정치권의 강압수사 주장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국정원 도청 수사는 15일 두 전 원장의 구속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이씨의 죽음이 돌발 변수는 될 수 있지만, 이미 사실관계가 거의 확정된 수사결론을 뒤집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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