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도청 사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갈래의 파장을 낳으며 한창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동기나 이유 여하를 떠나 자살에 이를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을 그의 인간적 고통을 생각하며 안타깝게 여긴다.
그는 도청의 직ㆍ간접 관련자들 중 한 사람으로 핵심 수사대상이자, 현직 대학 총장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섣부른 짐작을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는 검찰에 세 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그 후 임동원 신건 두 전직 원장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이를 괴로워했다고 한다.
특히 학교선배이자 직속 상사인 신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을 이끌었던 고위책임자로서 심한 자책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청행위가 낱낱이 밝혀지면서 정보기관의 위상이 만신창이가 돼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이 전 차장은 수 십년의 공직 인생을 비극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해석에 치중하거나 입장의 편의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은 삼가야 할 일이다.
가뜩이나 지금 검찰의 수사는 전ㆍ현 정권, 여야, 지역민심 등이 마구 얽혀 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놓인 상태다. 이 전 차장의 죽음이 도청의 진상 규명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도록 정치적 논란을 자중해야 한다.
도청은 정보기관이 오랫동안 역대 정권의 사유물로 전락하면서 저질러진 권력 범죄이다. 이 점에서는 이 전 차장도 결국 타락한 권력에 의한 희생자인 셈이다. 검찰 수사가 엄정해야 할 이유도 도청을 뿌리뽑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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