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전화기 한 대가 거실에 놓여 있거나 안방에 놓여 있었다. 식구 중에 누가 전화를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주듯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번호는 하나 여도 집안에 전화기가 여러 개 놓이기 시작했다. 우리집도 안방과 거실과 서재, 이렇게 세 개의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다.
우리 아들은 어릴 때 엄마아빠가 다른 방에서 전화를 바꿔주며 가끔은 자기의 전화를 엿들었다고 말한다. 전화를 바꾸어준 다음에도 끊지 않고 그냥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이 증거라고 했다.
그건 네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냥 둔 것이라 해도 잘 믿지 않았다. 이렇듯 아이들조차 누가 자기의 전화를 엿듣는 것을 싫어한다. 한동안 전화를 바꾼 다음 “그 쪽에 끊었어요?” 하고 되물을 만큼 불신 또한 오래간다.
지난 정권들의 불법 도청 얘기는 여러 가지로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한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그 일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구속된 것에 대해 ‘무도하다’고 말한다. 정말 무도한 일을 누가 저질렀는지 몰라서 하는 말일까.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슬픈 건 국민들이다. 전화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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