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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블레어 총리의 슈퍼맨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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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블레어 총리의 슈퍼맨 환상

입력
2005.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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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코믹 만화의 초영웅 주인공, 이른바 슈퍼히어로(Superhero)는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겉옷 위에 삼각 팬티를 걸친 채 등장한다. 우스꽝스러운 행색과 말투의 주인공이 온갖 초능력을 보이는 것에 대중은 한층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히어로의 진짜 마력은 아무런 대가 없이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특히 어떤 위기에도 타협을 거부하는 용기가 흔히 비겁한 세상에 강력한 도덕적 코드, 메시지가 된다.

●정치적 추락에 정신분석 논평

난데없이 웬 슈퍼히어로 얘긴가 하겠지만, 최근 영국 언론이 토니 블레어 총리를 그에 빗댄 논평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 흥미로워서다.

블레어 총리가 의회의 대 테러법안 표결에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패배,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그의 정치행태를 심리적 측면에서 분석한 글이 여럿 눈에 띈다. 국가 지도자의 정치행위에 심오한 정신세계를 논하는 것은 그만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인 성 싶다.

테러 혐의자의 구속수사 기한을 14일에서 90일로 늘리는 것이 핵심인 대 테러법안은 인권침해 우려가 커 집권 노동당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런던 테러를 겪은 여론과 선정적 언론의 지지를 업은 블레어 총리는 경찰도 지지한 60일 타협안조차 거부한 채 표결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31표차 패배로, 노동당 의원 49명이 지도부의 설득을 뿌리치고 반란표를 던졌다. 이들은 구속기간을 28일로 늘리는 수정안을 제출, 통과시켰다.

진보적 주류언론은 좋은 정부를 위한 큰 승리(Great victory), 블레어 총리의 큰 패배라고 평가했다. 과장된 것 같지만, 영국 정치 전통에서는 정부가 힘을 쏟은 법안을 의회가 거부하면 불신임으로 간주해 퇴진하는 관행이 있다. 이번에도 퇴진 요구가 거셌고, 도박업자들은 블레어가 사퇴할 확률을 7대4로 보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테러방지에 긴요한 법안을 거부한 것은 무책임하다며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국가를 위한 옳은 선택이라는 소신이다.

진지한 논평가들이 그를 슈퍼히어로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레어는 집권 초부터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극단적 대결을 지향했다. 정치적 타협 여지가 있을 때도 정당성과 힘을 시험하고 과시하듯이 ‘올인’을 거듭했다. 언론과의 논쟁을 법정에 끌고 가는 데도 과감했다.

이를 통해 대중적 카리스마를 구축했으나, 정권 안팎에 소외와 염증을 느낀 이들이 늘었다. 특히 이라크 침공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나 도덕적 권위가 추락했는데도 다시 국가를 테러위협에서 지킨다는 거창한 명분에 몰입한 것은 늘 로빈 아닌 배트맨을 꿈꾸는 심리라는 비유다.

단순한 비유를 지나 전문적 분석을 시도한 논평은 한층 주목할만하다. 이런 분석은 블레어 총리가 불우한 성장환경 탓에 삶과 존재를 불안하게 여기는 잠재의식을 가진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세상과 불운에 굴하지 않으려는 강박심리가 있고, 이 것이 강한 권력욕구와 승부근성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런 추정을 뒷받침 하는 근거는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의 3분의 1이 한쪽 부모를 14세 이전에 잃은 것이 세상과 권력에 대한 도전의지를 갖게 했다는 연구결과다. 블레어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뇌일혈로 중증장애자가 됐고, 10대 후반에는 어머니가 암에 걸려 오래 투병하다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성장기 불안이 초영웅 심리 바탕

블레어가 성장기 불안을 극복하는 데 도움됐을 깊은 신앙심은 자신이 국가와 정의를 위한 길을 가장 잘 안다는 믿음 내지 소명의식을 갖게 했으리라는 분석은 흥미롭다. 이런 신념이 독단적 성향으로 표출된다는 지적이다. 슈퍼히어로처럼 대중적 친화력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 만을 믿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초영웅 심리를 지닌 지도자는 권력에 집착하면서도, 이를 포기할 때는 멜로드라마 같은 제스쳐로 대중을 지배하려는 권력의지를 과시한다는 진단은 감명마저 남긴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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