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의 갑작스러운 자살은 검찰, 국정원, 호남대 관계자와 가족을 모두 혼란 속으로 몰아 넣었다.
특히 21일에도 동기를 밝혀줄 유서가 끝내 발견되지 않으면서 그의 자살배경을 놓고 구구한 해석들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이 전 차장의 자살이 몰고 온 파장을 감안해 변사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자살동기를 규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죽음과 관련된 메모 한 장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일단 가족과 지인들이 한결같이 “이 전 차장이 매사에 꼼꼼하고 내성적인 데다 구차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그가 세 차례의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이 ‘자신이 살기 위해 신 건 전 국정원장의 도청개입 혐의를 털어 놓았다’는 상황으로 외부에 비쳐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인 박모(57)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 건ㆍ임동원 전 원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전인 13일 가족들과 서울 청계산 등반을 하면서 남편이 ‘두 분 때문에 괴롭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같은 정황을 들어 이 전 차장이 윗사람의 허물을 덮지 못한 극도의 자책감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고 유서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자체 변사현장 조사에 나섰던 국정원도 경찰과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전 차장은 말수가 없어 조직 내에서도 ‘과묵한 신사’로 평가 받았다”며 “자살을 생각하셨다면 구차하게 유서 같은 것은 남기지 않을 분”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일각에서는 불법도청 사건으로 인한 국정원의 명예실추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로서 영원히 입을 닫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전체적 정황과 행적, 성격 등을 미루어볼 때 이 전 차장의 자살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전 차장의 빈소 주변에서는 “경찰에서 잔뼈가 굵고 여러 공직을 거쳐 정보기관의 고위직에 올랐던 사람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될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 마디도 안 남겼다 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등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전 차장의 빈소가 마련된 호남대 광산캠퍼스 복지관에는 이날 오후 김재기 순천대 총장, 강운태 전 의원,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이상업 국정원 2차장 등이 조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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