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를 통해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상시 도청 대상자가 1,8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도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법조계에서는 도청 대상자들이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당했으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손배소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지 10년 이내, 불법행위를 알게 된 지 3년 이내에 제기할 수 있어 소멸시효상 걸림돌도 없는 상태다.
2000년 대한의사협회장 재직 시 의약분업 사태 관련 전화내용을 도청당한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최근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는 등 줄소송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송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자신이 도청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문제부터 쉽지 않다. 국정원은 2002년 3월 감청장비를 소각하면서 관련 자료 등 물증을 전부 폐기해 검찰 수사과정에서 확보된 도청사례는 대부분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에 의존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도청 대상자 1,800명이 누구인지 완벽하게 밝히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가 17일 국회 청문회에서 “명단 공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혀 일부 진술과 정황이 있는 도청 대상자도 공개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반적으로 손배소의 성패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입증하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도청은 개인에게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정확한 피해 정도와 액수를 산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승소하더라도 정신적 피해를 감안한 위자료 수준의 배상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전망이다.
이처럼 소송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재야ㆍ시민단체가 국가의 불법행위를 단죄한다는 의미에서 ‘공익소송’ 형태로 손배소를 제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정원의 도청대상에는 최열 환경운동연합 고문,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이남순 전 한국노총 위원장, 단병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동당 의원 등 재야ㆍ시민단체 인사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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