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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자·마포 황부자 '전통의 힘' 객석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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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자·마포 황부자 '전통의 힘' 객석을 사로잡다

입력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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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술마시게 하네 / 덧없는 인생 살같이 지나고 / 세상에 병이 깊어 술에 젖었네.” 고려 시대의 문장가 이규보가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유장하게 뽑아 올리는 시조창에 풍류 가객의 진면목이 녹아 있다. 이어지는 말은 호기롭기까지 하다. “내 살아 있을 때 술상이나 차려주라. 이 땡중아!” 전래의 연극적 자원들을 조합하고 시대에 맞게 변용한 무대가 특별한 풍경을 선사한다.

연희단거리패의 ‘아름다운 남자’는 고려의 난세를 배경으로 한다. 몽고의 침입과 무인 지배 시대 당시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 몸을 사른 세 학승(學僧), 통수기 만전 길상의 이야기다. 함께 등장하는 고승 지공대사와 문호 이규보는 각각 성과 속의 정점을 상징하는 인물들로, 극의 밀도를 더욱 높여준다.

한물 간 논다니 아난과 통수기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자칫 딱딱해 지기 쉬운 극의 분위기를 눅이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기(유마)가 눈 먼 아이로 설정되는 것. 인간이란 어차피 눈먼 상태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함의다.

전통의 문화 유산들을 어떻게 소극장 공간 속으로 들어 앉히느냐의 문제는 공연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탈춤, 꼭두극, 산대, 굿, 전통 무예가 볼거리의 요체라면 범패, 가곡, 창, 염불, 민요 등은 극장 공간을 풍성하게 감싸주는 고유의 들을거리다. 특히 고려 무인시대의 대표적 공연 양식이었던 산대희를 올곧게 재현하기 위해 극단은 조선 후기 제작된 그림을 텍스트로 삼는 등 노력을 쏟았다.

김소희 장재호 이승헌 최우성 등 이 극단 산하의 우리극연구소에서 수업을 쌓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 연희과 음악과 출신 3명이 가야금, 피리, 해금을 연주한다. 작가 이윤택씨는 “중세 유럽에 서사성과 제의성을 겸비한 수난극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내 방식의 수난극을 만들고 싶다는, 10년 넘게 묵은 꿈이 이뤄지는 자리”라고 말했다. 남미정 연출. 29~12월 28일까지 게릴라극장.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4시 30분, 일 3시 6시. (02)763-1268

흐드러진 놀이판은 어떨까. 극단 미추의 ‘마포 황부자’는 전래의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버무려 인간의 허영심을 비웃는다. 가난에 한 맺혀 돈만 모은 황부자의 골칫거리인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기까지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청나라와 무역업을 하는 김부자가 급전이 필요한 나머지 “약속일까지 갚지 못 하면 살코기 한 근을 떼어 준다”고 한 대목에서 마당극은 ‘베니스의 상인’과 한 몸이 된다.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며 황부자를 절망케 한 재판관이 실은 딸이었으며, 더욱이 김부자의 아들과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임이 밝혀지면서 극은 헤피 엔드로 치닫는다.

무대는 걸쭉한 풍자로 마당극 특유의 현재성을 입증한다. 금광 개발 열풍, 한양 천도, 벤처 투자, 각종 투기 등 사람들의 주머니를 거덜내는 작태들이 해학의 프리즘을 빌어 투영된다. 또 지금 청년들의 꿈을 대신하는 각종 재테크 열풍의 작태까지 도마에 올려 돈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손진책 연출, 배삼식 극본, 박범훈 음악. 윤문식 김성녀 등 마당놀이의 스타들이 출연, 1981년 첫선을 보인 마당놀이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임을 입증한다. 12월 18일까지 장충체육관. 화~목 7시 30분, 금ㆍ토 3시 7시 30분, 일 2시 6시. (02)747-5161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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