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조직의 억압과 굴종을 상징하는 내무반 생활을 그린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가 어제 개봉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은 영화는 이제 26살인 윤종빈 감독의 올 대학 연극영화과 졸업작품이어서 한층 화제가 됐다.
제작비 2,000만원을 들여 소형 캠코더로 찍은 영화는 무명 배우와 스탭이 보수 없이 참여, 독립영화 방식으로 만들었다. 우리 관객에게 익숙한 군대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폭력적 환경에 희생되는 젊음의 고뇌를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다.
■윤 감독은 이 영화로 상업적으로도 촉망 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그러나 선ㆍ후임병이 잇달아 자살하는 영화 줄거리와 전혀 다르게 이들의 우정을 다룬 가짜 시나리오로 군 부대 촬영허가를 받았다며 육군본부가 신문 사과문 게재 등을 요구, 논란이 됐다. 윤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육군은 속임수에 의한 공무집행방해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윤 감독은 군에서 원래 시나리오를 보고 협조를 거부해 부득이 옳지않은 방법을 썼다며 개인적 처벌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책임을 인정한 것 같지만, 자신의 선택과 그 성과의 정당성을 훼손할 뜻이 없다는 소신으로 들린다.
■이 논란에 주목한 것은 윤 감독의 언행이 아귀가 맞지 않고, 언론의 자세 또한 안이하다고 느낀 때문이다. 논란의 초점은 구체적 비리사건을 고발하는 것이 아닌 허구적 창작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짜 시나리오를 제시한 작가적 양심에 맞춰야 한다고 본다.
군의 적폐에 대한 문제의식이 진정하더라도 군 조직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군의 지원을 받아 군의 명예를 해칠 수 있는 영화를 몰래 찍은 것은 그야말로 양심 불량이다. 일반적 법리로는 신의성실 원칙을 어긴 셈이다.
■육군이 상영금지나 내용삭제 요구 등으로 강경대응하지 않은 것은 떠들썩한 분란을 피하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와 언론이 영화와 감독에 대한 칭송에 스스로 얽매여 윤 감독의 기만행위가 지닌 부도덕성과 이기심을 소홀히 넘기는 것은 거슬린다.
이 사건을 군 비판에 대한 경직된 대응으로 보거나, 창작의 자유 차원에서 논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신의 구체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서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서 흔히 고상하나 추상적인 명분을 방패 삼는 몰염치한 행태에 사회가 관대해서는 안 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