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길 위에서 뜻밖의 지명을 만날 때가 있다. ‘대가리’라는 동네도 있고, ‘유방동’이라는 동네도 있고, ‘야동’, ‘구라리’라는 동네도 있다. 한자로 적으면 뜻이 깊을 텐데, 그냥 우리말로 부르면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내 고향 부근에도 그런 마을 몇 개가 있다. 강릉에서 정동진으로 나가는 길옆에 ‘뙡'이라는 동네가 있다. 마을 입구에도 커다란 돌에 ‘살기 좋은 뙡 마을' 써놓았다. 한글로 저런 글자 표기도 가능한가 싶어 몇 번이나 표지석을 바라보았다.
또 양양으로 가는 길에 ‘즈무’라는 동네가 있다. 컴퓨터로 ‘즈무’라고 쓰면 잘못 입력한 글자인 줄 알고 바로 영어로 변환시켜 ‘wman'으로 수정해버린다. 나도 처음엔 ‘주무’를 잘못 쓴 것이겠거니 했는데, 원래 동네이름이 ‘즈무'라고 했다.
가장 고약스러운 지명은 ‘주길’이다. 학교에서 친구들끼리도 그 동네 아이들을 주길 아이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일부러 꼭 주길 놈이라고 불렀다. 그 동네에 고모님 한 분이 시집가 사셨다. 아내도 처음 시집을 왔을 때 그 고모님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집안 사람들 모두 죽일 고모, 죽일 애라고 부르냐고 했다.
소설가 이순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