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의 고전이라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달리 이 책은 ‘미(美)의 역사’라는, 훨씬 방대한 예술 세계를 섭렵한 듯한 제목을 달고 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움베르토 에코와 공동 저자인 지롤라모 데 미켈레가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서양문화 속의 미(美) 의식의 변화이다.
다만, 저자들은 보통의 미술사 책들이 취하는 것과는 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 문화를 시기별로 한 두 가지의 일정한 사조로 단순화하는 교과서적인 수법을 따르지 않았다.
이 책은 시대별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되 동시대에 다른 미적인 이상이 어떻게 갈등하고 있었는지를 함께 드러내는데 더 관심을 갖는다. 하나로 통일된 미술사조나, 시대를 뛰어 넘는 미의 본질보다는 미적 이상의 차이, 그리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방대한 다양성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코는 흔히 ‘암흑의 시대’로 규정하는 중세를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 중세의 세밀화들은 ‘고작 창문 하나밖에 없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제작되었을지도 모를’ 그림들이지만 빛으로 가득 차 있다며, 중세를 실은 빛을 동경한 시대로 규정한다.
나아가 낭만적인 연애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기사와 귀부인의 사랑이 꽃피던 시기이며, 괴기스러운 이미지들에 대한 취향이 시작된 시대라고 설명한다.
그들에게 고대는 비례와 조화로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던 시대이며, 근대는 이성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감정과 열정에 몰입한 시기이다. 현대는 예전에는 미의 대상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서 새로운 미적 감수성을 발견하는 시대이자, 아방가르드와 그 아방가르드가 거부했던 소비의 미학이 전면에 나서는 모순의 시대이다.
시대별 미술문화를 폭 넓은 문화사적인 프리즘으로 조망하는 이 책은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이 사회의 변동과 계급 갈등, 과학의 발견과 가치의 변화에 얼마나 크게 빚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저자들은 플라톤, 칸트, 니체 등 사상가들의 미학이론과 셰익스피어 등 여러 문학 작품을 별도로 인용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해냈다.
원서가 나온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작한 풍성하고 선명한 도판은 눈에 호사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김범수기자 bs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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