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村上龍ㆍ53)가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한국 개봉(12월1일)을 앞두고 17일 방한했다. 1988년 발표한 자신의 소설 ‘토파즈’를 원작으로 92년 영화화한 ‘도쿄 데카당스’다.
SM(새디즘&마조히즘)클럽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 현대 도쿄인의 뒤틀린 성적 욕망의 희생양으로 서서히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일본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무라카미 류 ‘감독’작품의 국내 개봉은 처음이다.
이 영화는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지난해 1월 수입추천 불허 판정을 받았다. 이후 3차례에 걸친 재심에서도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아 사실상 국내 개봉이 불가능했으나 9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마약주입, 동성애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7장면, 6분8초 분량을 삭제한 뒤 ‘18세 관람불가’ 결정을 내려 간신히 개봉이 성사됐다.
“일본에서도 역시 개봉이 힘들었습니다. 극장도 잡지 못하고, 상영을 결심한 극장도 주변의 반발로 결국 포기하곤 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20분 가량이 삭제된 채 개봉하기도 했죠.”
그는 한국에서 ‘도쿄 데카당스’가 겪은 우여곡절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심의제도 등 여러 제도를 통해 작품에 간섭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자위도구를 이용한 항문성교를 하고, 시간(屍姦)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으며, 여주인공의 소변을 마시는 등 극단적인 형태의 변태 남성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비정상적 성욕에 집착하는 인물들은 평소에는 부유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외양을 지닌 도쿄인들이다.
“일본은 부자지만 그건 위험한 돈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비록 부유하긴 해도 긍지는 가질 수 없는 일본의 현실을 정면으로 꼬집는다. 하지만 무라카미 감독은 “영화의 의미를 내가 스스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소설도 영화도 읽는 법 보는 법은 개개인의 자유”라고 해석의 여지를 두었다.
40권 이상의 소설과 에세이가 국내에 번역 소개돼 있는 그는 영화연출, 공연기획, 스포츠 리포터, TV 토크쇼 사회자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 왔다. 영화의 경우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79)를 시작으로 ‘래플스 호텔’(89) ‘교코’(2000) 등 많은 작품을 직접 연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뛰는 한국팀의 투지가 부럽다’는 글을 기고했고, 서울 명동에 단골 고추장 게장집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표해온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개성이 각기 다른 감독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당신을 소설가로서 100점이라고 한다면 영화감독으로는 스스로 몇점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70점 정도”라고 답했다.
차기작 계획에 대해서는 “최근 영화계에 젊고 우수한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어 나는 당분간 소설에만 전념할 생각”이라며 “다만 쿠바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픈 소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지향 기자 misty@hk.co.kr사진=김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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