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에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던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양당 상원 의원 8명은 16일 2031년까지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을 50% 가량 줄이는 내용의 에너지 절약 법안을 발의했다.
이날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 재무위원회는 5개 석유 메이저에 대해 50억 달러(5조2,000억원) 초과이득세(windfall profits tax) 부과 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을 공화당이 받아들인 것이다.
에너지 절약 법안
민주당의 조 리버맨과 에번 베이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국가안보를 위한 차량 및 연료 선택법안(The Vehicle and Fuel Choices for American Security Act)’에는 공화당 의원들도 대거 동조할 뜻을 밝혔다. 이 법안의 골자는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을 250만 배럴 줄이고 2031년에는 1,000만 배럴까지 절약한다는 것이다.
또 하이브리드와 차세대 디젤 차량 등을 연구 개발, 생산하는 업체는 최고 35%의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2016년에는 차량 생산대 수 중 절반 가량을 차세대 에너지 절약형으로 대체한다. 이밖에 자동차 경량화와 대중교통 활성화 등도 적극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보수ㆍ진보 진영 모두 법안을 지지하고 있어 상원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은 중동과 남미 산유국의 수입 석유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중동과 남미 지역에 있는 미국의 주요 석유 수입국에서 갈수록 반미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들 나라는 석유를 앞세워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고 이는 조지 W 부시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반면 환경 단체 등 진보 진영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환경 오염 방지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석유 판매 초과 이득세 부과
상원 재무위원회는 이날 엑손모빌, 코노코 필립스, 영국석유(BP), 셰브론, 로열더치셸 등 5개 석유 메이저에게 초과이득세 50억 달러를 부과하기로 한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4표, 반대 8표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23일 상원 전체 회의에서 통과되면 2006년 한 해 동안 적용된다. 미국에서 특정 분야 기업들의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법안을 만든 것은 1970년대 이래 처음이다.
전통적으로 석유 메이저에게 우호적인 공화당이 재무위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이 이번 표결에서 석유 메이저에 등을 돌린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석유 메이저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비난 여론에 대해 민주ㆍ공화 두 당 모두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그 동안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순이익의 50%를 세금으로 거둬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고 주장했지만 공화당은 이를 반대해 왔다.
엑손 모빌 등 5개 석유회사는 고유가에 힘입어 지난 3분기에 총 330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떼 돈을 벌고 있다.
반면 국민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휘발유 부족에 시달렸고 “석유 회사들이 기름값을 마구 올려 폭리를 취했다”며 분노했다. 국민 여론을 의식한 의회는 결국 9일 석유 메이저 최고경영진(CEO)을 청문회에 불러 부당 이익을 얻었는지를 추궁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 4개 석유 메이저 CEO들이 2001년 딕 체니 부통령의 에너지 대책팀을 만나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논의한 문건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WP는 이는 결국 체니 부통령이 비밀리에 석유 메이저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수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했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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