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을 결심했었죠. 죽어서라도 청계천 공사를 막아보자는 심정으로요.”
2003년 1월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청계천 상인 3,000여명이 거리로 나섰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계획이 가시화되자 터전을 잃게 된 세운상가의 터줏대감들이 “공사 결사반대”를 외치며 집회를 시작했다.
이후 6개월여 동안 상인 수천명이 청계천 복원반대 투쟁의 기치를 올렸고 당시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장이었던 이웅재(55ㆍ청계천재개발상인대책위원회 위원장)씨는 그 중심에 버티고 있었다.
서울시청 정문 계단에서 삭발하며 누구보다 강경하게 청계천 복원을 놓고 서울시와 맞섰던 그는 이제 다시 청계천 상인으로 돌아와 있다.
이씨를 10평 남짓 한 세운상가 그의 가게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주변 상인들로부터 ‘어용’이라는 비난을 귀따갑게 들어야 했다. 언제부터인지 ‘청계천 전도사’로 돌변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이씨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상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청계천을 찾았던 시 공무원들을 보며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청계천 복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감할 수 있도록 시에 협조하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씨가 ‘투쟁’에서 협력’으로 돌아선 것은 2003년 7월 무렵. 이때부터 그는 ‘얻을 것은 얻어내자’는 실리를 택했고 송파구 문정동에 청계천 이주상인들을 위한 유통단지 건설이라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상인으로 돌아오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고 강경 일변도의 투쟁을 접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50대 상인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에 ‘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와주십시오’ 라는 간단한 메모만을 남긴 채. 그를 보고 상인들의 생존권 수호를 위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이를 악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당시는 청계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씨는 거리에 걸린 모든 축제용 깃발을 조기로 게양했다.
이씨의 휴대폰이 울린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불분명하지만 긴박한 톤이다. 이씨는 동료 상인으로부터 온 듯한 전화를 끊으면서 “사실 서울시와 청계천 상인의 갈등은 마무리됐지만 이익을 좀더 얻기 위한 상인들끼리의 잡음이 새로운 골칫거리”라고 털어놓았다.
“문정동 유통단지로 자리를 옮기게 된 상인들이 너도나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걱정입니다.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을 놓고도 의견이 갈려 청계천 상인들의 생활이 안정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기만 합니다.”
이씨는 얼마 전 문정동 유통단지의 선진모델을 체험하기 위해 유럽 일본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유통 몰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청계천과 같이 각종 상품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는 구조가 보편화돼 있습니다. 당연히 새롭게 변모하는 청계천 상가도 이러한 특성을 가져야겠지요”라며 청계천 상권 부활에 대한 확신을 내비쳤다.
청계천변으로 내려선 이씨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복원된 청계천이 상인들의 피눈물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청계천은 겉보기와 달리 아픈 구석이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기자의 속이 순간 뜨끔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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