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도 저고, 아키야마도 저예요.”
외국에 사는 사람인데도 그에게 뭔가 빚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인물이 있습니다. 친인척 어른을 제외하면 기자에겐 2명이 있습니다. 추성훈과 로버트 김입니다. 추성훈은 재일동포 4세 격투사이고, 로버트 김은 한국정부에 군사기밀을 건넸다는 혐의로 옥살이를 한 재미동포입니다. 두 사람 모두 얼마전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지난 5일이었죠. 추성훈은 서울에서 열린 히어로스(HEROS)라는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일본인 상대 선수를 꺾은 뒤 자신의 양쪽 어깨를 번갈아 툭툭 치며 시선을 유도했습니다. 왼쪽 어깨엔 태극기, 오른쪽엔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곤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중에게 우리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시합을 해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국적이) 일본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가슴 안에는 그리고 지금 여기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 한국인입니다.” 추성훈과 로버트 김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조국을 좋아했습니다.
이 때문에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하면 일본대표가 될만한 전도양양한 선수였지만 한국국적을 지키면서 유도선수로 대성하기 위해 1998년 부산으로 건너 옵니다. 로버트 김은 기밀을 넘긴 혐의로 98년 체포됩니다.
그러나 조국은 두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추성훈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지만 중요 대회 출전권이 걸린 경기의 승부마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울어야 했습니다. 한국 유도계를 꽉 잡고 있던 한 대학 출신의 텃세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김은 9년 동안 옥고를 치르지만 한국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살펴서인지 수수방관합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조국을 사랑합니다. 2001년 일본으로 돌아가 귀화한 추성훈은 보란 듯 일본 무대를 휩쓸었고, 2002년 아시안게임 81kg 결승전에선 한국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일본으로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메일 주소에 여전히 한국이름의 영문표기인 ‘choosunghoon’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추성훈이란 이름 석자로 남겨두고 싶답니다. 그는 “귀화해서 추성훈이란 이름은 사라졌지만 내 이름이 추성훈이라는 것은 (가슴 속에) 새겨져 있고, 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고 평생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라고 강조합니다.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는 추성훈의 일본식 발음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로버트 김은 6일 입국하면서 “과도한 처벌을 한 미국과 구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정부였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추성훈의 다음 상대는 브라질의 호이스 그레이시입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위대한 격투사에 빠짐없이 꼽히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주무기는 주짓수란 브라질식 유도인데 시조는 20세기초 유럽 북미 남미 등을 돌며 실전대결을 벌였던 마에다 미츠요란 전설적인 무도가입니다. 추성훈도 미츠요란 이 유도 달인을 흠모해왔다고 합니다.
K-1의 연말 올스타전인 다이너마이트에서 격돌합니다. 추성훈이 선전하면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요시다, 미들급 챔피언인 실바, 일본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같은 정상급 선수와 대결을 벌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보니 어제(17일)가 을사늑약 체결 100년이 되는 날이었더군요. 지금도 동북아의 역학구도가 한 세기 전인 그때와 별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분도 있으시더군요. 추성훈과 로버트 김처럼 조국을 뜨겁게 포옹하는 분들이 우리땅에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추성훈이 괜찮은 사내라고 생각되시면 KBS1 TV가 13일 방송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를 감상하십시오. KBS 홈페이지나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평소 KBS에 쓸데없이 돈을 강탈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본 뒤 변심을 했답니다.
김경철 체육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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