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당연히 꽃미남 배우 캐스팅을 생각했죠. 20대 초, 중반의 잘 나가는 남자 배우 여러 명한테 시나리오를 줬는데, 누구도 답이 없더라구요. 잘 나가는 배우일수록 ‘한다, 아니다’ 확답 없이 질질 끄는 통에….”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제작 MK픽처스ㆍ이하 광동광)의 김현석(33) 감독은 광태 캐스팅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러다 제작사와 친분이 있는 봉태규(24)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하겠다”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소문처럼 판단 빠르고 영리한 친구더군요. 마침 다른 꽃미남 스타가 출연 의사를 전해 왔음에도, 저는 태규군을 믿었죠.”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두 형제. 소심하고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성격 탓에 눈 앞에서 사랑을 놓치는 형 광식과 순간의 즐거움을 찾아 수 많은 여자를 전전하는 동생 광태의 연애담을 그린 영화 ‘광동광’에서 봉태규의 캐스팅은 의외다.
이 땅의 평범한 청년을 대표하는 배우 봉태규가 “한 여자를 12번 이상 안 만나는 게 연애의 룰”임을 설파하는 바람둥이 광태라니 말이다. 봉태규는 자신이 연기한 광태를 “지금껏 없던 족보 없는 날라리”라고 설명한다. 잘 생기지도 잘 나지도 못했지만 타고난 입담과 뻔뻔함으로 승부한다. 김 감독은 “만화 속 ‘짱구’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대비되는 두 형제는 각각 1990년대와 2000년대식의 사랑을 대표한다. 김 감독과 같은 1972년생 91학번 광식(김주혁)의 사랑은 세 자릿수 노래방 번호를 자랑하는 최호섭의 노래 ‘세월이 가면’ 아니면 70년대 생이 열광했던 영화 ‘영웅본색’ 주제곡 같은 추억의 소재를 통해 낡고 느린 느낌을 전한다. 반면 광태의 연애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의 음료 쿠폰처럼 지극히 2000년대 다운 소재를 끼고 펼쳐진다.
감독이 자신과 주변인의 추억에서 건져 올린 세밀한 에피소드와 허를 찌르는 대사를 통해 다소 밋밋해 보였던 영화의 얼개는 조밀하고 매끈한 로맨틱 코미디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사진관과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며 형제가 단 둘이 지내게 된 원인이 삼풍백화점 붕괴때문이라는 식으로 영화적 시공간을 구체화 시킨 것도, 여성을 철저하게 객체화 시키고 철저하게 남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로맨스물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95년 카투사로 군복무 하던 중 쓴 시나리오 ‘사랑하기 좋은 날’이 덜컥 영화로 만들어지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은 김 감독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각본), ‘YMCA 야구단’(감독) 등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만 했다. 원래 차기작도 선동렬 스카우트 분쟁을 소재로 하려 했다. “2002년인가 다른 영화인들은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가 있는데, 저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감사패를 받고 있었어요.”
야구인인가 영화인인가 회의에 빠진 그는 야구 영화를 잠시 접고 ‘광동광’에 매달렸다. 인터뷰 전날도 김 감독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번 연기가 괜찮은지” 고민했다는 봉태규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으로 연기 경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밍숭맹숭한 역은 저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다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출연하면 극장에 사람 들겠어요? 드라마 ‘한강수 타령’에서처럼 모범생 역할 하면 어른들은 좋아하겠지만, 그건 재미 없어요.”
‘광동광’은 남자들이 더 공감할 영화라고 둘은 말한다. 이요원이 맡은 윤경은 광식이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 온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일웅(정경호)과 결혼한다. 그리고 명대사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를 남긴다. “잡을 수 있는 수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힘 없이 떠나 보낸 ‘인생의 수 많은 윤경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거죠. 무섭고 너무 현실적인 여자지만 미워할 수는 없잖아요.”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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