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는 궁궐도, 집도, 가구도, 소품도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다. 그러자면 좋은 나무를 골라 다듬은 뒤 서로 이어야 했는데 그 때 꼭 필요한 게 못이었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떤 못을 사용했을까.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30여년째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정대영(丁大英ㆍ56)씨가 ‘조선 시대의 못’을 냈다. 옛날 못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드문 책이다. 동인방.
비록 전공자는 아니지만, ‘한국의 궤’(1993년) ‘한국의 장’(2002년) 등을 발간한 고가구 전문가이다. 그는 책에서 조선 시대 고가구에 쓴 못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궁궐 등 대형 건물에 사용한 못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것.
지금과 달리, 조선 시대에는 금속 못 외에 나무 못도 널리 쓰였다. 궤짝 등 무거운 물건을 집어넣거나 두꺼운 판재를 이어야 할 때는 쇠 못을 썼지만 판재가 얇으면 나무 못을 사용했다. 나무 못은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대나무가 많은 남부 지역에서는 대나무 못을,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참나무, 박달나무, 싸리나무 등으로 만든 못을 많이 썼다. 이 가운데 대나무 못은 재료 구하기가 쉽고 만들기도 용이한데다 200년 이상 지나도 가구가 뒤틀리거나 변형되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높아 인기를 모았다.
머리가 있는 못과 없는 못, 머리가 둥글넓적한 못과 고리 모양의 못, 박히는 몸통이 하나인 못과 둘인 못 등 형태도 다양했다. 철보다 무르고 연한 구리 못은 아래 부분을 둥글게 감은 원뿔형을 취함으로써 강도를 높였다. 못은 두 판재를 잇는 게 가장 큰 용도였지만 장식용으로, 문고리로도 사용했다. 호사가들은 상아, 쇠뿔, 짐승의 뼈, 심지어 은으로도 못을 만들어 약장(藥欌), 목침, 악기 등에 사용했다.
정대영씨는 “다양한 못이 사용된 이유는 선조들이 가구의 재료와 아름다움 등 여러 측면을 동시에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가구의 바닥면에 쇠 못을 사용하면 습기 때문에 산화 현상이 일어나고 가구 전체가 뒤틀릴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쇠 못을 쓰지 않았다. 또 장식용으로 사용할 때는 장식과 같은 재질로 못을 만들어 일체감을 주려 했다.
중요한 것은 가구의 쓰임새와 판재의 재질, 두께 등을 먼저 결정한 뒤 가장 적합한 못은 나중에 만들었다는 점이다. 가구 따로, 못 따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못을 가구의 일부분으로 여겼던 것이다.
당시에는 일일이 손으로 못을 만들었기 때문에 장인들의 땀방울도 스며있다. 쇠 못의 경우, 대장장이가 망치로 쇠를 두드려 제작했다. 두들김을 반복하면 조직의 밀도가 높아져 더욱 단단해 졌다. 대나무는 상하 방향으로 잘 갈라져 못 만들기가 의외로 쉬웠다.
정대영씨는 순전히 직업 때문에 못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고가구를 구입하고 보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못에 주목하게 됐다. 조선의 못에 대한 자료가 없을뿐더러 가끔 이름난 목수에게 질문을 해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해 책을 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못은 그에게 고가구의 진위를 가리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가구는 낡았는데 못이 새 것이라든지, 못 머리에 뽑힌 흔적이 있다든지 아니면 못의 재질이 서로 다르다면 진품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못을 가리켜 ‘고가구의 지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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