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이, 반갑습네다. 식사는 드셨습네까?” 조선족 출신 새댁 최향화(25)씨가 구수한 옌볜 사투리로 인사하자 베벌리 로사노(32ㆍ필리핀 출신)씨가 받아친다.
“총각김치 먹었지라우~.”“아따~ 싸게싸게 빨리 들어오랑께~.”(에멜린다 초우ㆍ42ㆍ필리핀 출신). 이때 야마모토 슈코(山本周子ㆍ35)씨가 “이 사람들 한국 아줌마 되려면 한참 멀었네. 표준어를 써야지”라고 혀를 차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15일 오후 전남 곡성군 곡성읍 곡성문화원의 한 강의실 풍경이다. 들뜬 분위기는 곡성에 경사가 났기 때문. 전국문화원연합회(회장 권용태)가 시에 관심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제3회 전국 문화 가족 창작시 공모전’결과 수상자 32명 중 10명이 곡성군에서 나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입상자 10명 중 4명이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주부라는 점.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은 결혼 4~10년째로 이제 제2의 고향인 곡성을 알리기 위해 ‘지역 문화ㆍ관광 해설가’교육을 문화원에서 받고 있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서익환씨는 “네 분의 시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사용한 점이 공통된다”고 지적했다. 넷이 남편을 따라 곡성에 온 계기는 달라도 향수가 사무치기에 서로 따뜻하게 격려하는 애틋한 사이가 됐다.
‘Life(삶)’라는 영시로 응모해 입상한 에밀린다 초우씨는 1999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2남을 둔 주부다. ‘母(어머니)’라는 일어시로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장상’을 받게 된 야마모토씨는 95년에 귀화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겨울밤’으로 ‘한국문인협회이사장상’을 받게 된 최향화씨는 2002년 중국 지린성 연지시에 사는 시고모 소개로 남편을 만나 지금은 1남 1녀를 두었다.
‘My Native Land(나의 모국)’를 지은 로사노씨는 2000년 민다니오섬에서 시집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녀는 “명절이 돌아오면 괜히 외롭게 느껴지고 아주 가끔 남몰래 눈물지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끔 시를 써봤는데 이렇게 상까지 탈 줄은 몰랐습니다”라며 기뻐했다.
“한국 남자는 외모가 잘생겼습니다. 그리고 일과 사랑 두 가지 다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신토불이 우리 남편도 국경을 넘어 신부를 데려왔지요. 호호호.” 그녀는 아들 대철(4)이가 한국어와 영어, 필리핀 고유어 등 3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한다.
음료수 보급소를 운영하는 남편 장정로(38)씨는 “딱 한번 아내를 울린 적이 있는데 문상 갔을 때 장지까지 따라가겠다고 우겼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장지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는 곡성 풍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에 4~5차례 있는 제사도 잘 치르고 시부모에게 효도하니 저야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들의 좌충우돌 적응기는 끝도 없다. 시어머니한테 배운 김치찌개 솜씨를 설명하는 로사노씨도 처음에는 된장과 청국장 냄새 때문에 기겁을 했다.
네 주부의 소망은 평범한 한국인 며느리가 되는 것이다. 최향화씨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남자는 1위가 남편, 2위가 영화배우 장동건이다.
“다만 자격지심이겠지만 중국에서 왔다고 깔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이곳 분들은 다 잘해주시는데 TV 보면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가정의 소중함을 체감했다는 야마모토씨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는 시를 썼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도 아팠다는 것을/(중략)/ 당신의 아픔/ 그 뜨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나/ 이제 알았습니다.’
마닐라 근처 소도시에서 온 에멜린다 초우씨는 홍콩에서 영어 가정교사를 하다가 출장차 온 남편 조천형(44)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기자에게 선물을 주지 않으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을 할 만큼 활달한 성격으로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필리핀인이니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 필리핀인,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범(凡)아시아인이지요.”
초우씨와 야마모토씨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리는 ‘국민의 시 낭송의 밤’에 초청돼, 다른 입상자들과 자신의 시를 낭송한다.
박석원기자
김명수기자
나의 모국
필리핀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진주와 이국적인 해안의 나라
말레이계에서
스페인과 중국에서 온 다른 선조들까지
사방에는 섬 천지에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풍경뿐이네
강이며 폭포며 화산이며 바다며
누가 본들 뿌듯하지 않으리오
방언도 하고 많아라
라틴계와 영어의 사촌들
그 중에서도 타갈로그어는 공용어
모두들 이 말로 소통한다네
아무리 멀리 떠나 있다 한들
모국어야 잊을손가
우리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오
모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썩은 고기와 야수보다 나쁘다
※필리핀 주부 베벌리 로사노씨 작. 남편 장정로씨가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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