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바쁜 두 사람
◆ '안주인' 허남식 부산시장, 매일 만찬·市홍보 분주
APEC의 소프트웨어가 정부라면 하드웨어는 부산시다.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훌륭해도 하드웨어가 부실하면 건국 이래 최대 외교행사라는 APEC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귀빈 영접에서부터 먹고, 자고, 이동하고, 쉬는 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허남식 부산시장은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APEC의 ‘바깥 주인’ 이라면 손발이 열 개라도 부족한 ‘안주인’ 이다. 그러나 허 시장에게는 이런 지원 성격의 실무 외에도 이번 기회에 ‘부산 브랜드’ 를 전세계에 높여 포스트 APEC 부가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도 떠안고 있다.
“개최도시로서 장소만 빌려줄 수는 없다.” 이게 허 시장의 생각이다. 그의 일정을 보자. 14일 저녁 각국 대표단 등 250명을 호텔에 초청해 환영리셉션을 열었다.
16, 17일에는 기업인 초청 만찬, 18일에는 내외신기자 환송만찬 등 밥 먹고 인사하며 부산을 알리는 게 일이다. 또 부산과 경제교류가 많은 일부 회원국 정상과 만찬 일정도 잡아놓고 있으며, 이미 외국 기업과 1억 달러가 넘는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5일에는 국제미디어센터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2020년 부산시의 하계올림픽 유치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개최도시의 수장으로서 정부측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으나 마찰이 있었다는 뒷말이 있다. 내년 민선시장 재선도 머리 속에 있을 것이다.
부산=특별취재단 박상준기자 sjpark@hk.co.kr
◆ '바깥주인' 반기문 외교통상장관 자투리 시간마저 회담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일정표에는 다소 과장하자면 단 1초의 여유도 없다. 회담과 회의의 연속이다. 21개 회원국 장관들과의 회담 간격은 고작 5분이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항상 속보다.
15일 반 장관은 숙소인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조찬 겸 간부회의로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분은 은퇴할 때까지 이번과 같은 중요한 외교행사는 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달라는 독려이자 자신에게 거는 주문인 듯했다.
반 장관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벡스코에서 외교ㆍ통상 합동각료회의를 주재하기 앞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장관과 만나 김치파동 등 껄끄러운 현안을 매듭지었다.
오후 7시 각료회의 공식만찬 시작 전까지의 자투리 시간은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외무장관과의 양자회담을 소화하는 데 할애됐다. 지칠대로 지친 반 장관은 밤 9시 마지막 일정인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다. 전날에는 일본 등 5개국 외무장관들과 릴레이회담을 가졌다
반 장관은 14일부터 16일까지 13번의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17일부터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쇄 정상회의에 배석한다. 35년 간의 외교관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 장관은 유엔사무총장 출마설을 앞두고 국제적으로 지명도 높은 외교적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부산=특별취재단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쟁쟁한 CEO들 속속 입국 숙소 모자라 호텔 일반실로
APEC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각국의 대표적 기업인들이 속속 입국하며 관심 있는 인사와 서로 접촉하기 위한 막바지 일정 조율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시티그룹 빌 로즈 수석 부회장(시티은행 CEO) 등 몇몇 거물급 인사들은 전용기를 동원했다.
17~19일 부산롯데호텔에서 각국의 경영인 800여명이 모여 주요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CEO 서밋(summitㆍ정상회의)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인 포럼이다. 이번 주제는 ‘기업가 정신과 번영_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성공적인 파트너십 구축을 위하여’ 이다.
‘APEC 기간 중 가장 만나고 싶은 인사’로 꼽힌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eBay)의 멕 휘트먼 사장은 14일 일찌감치 방한했다. 휘트먼 사장은 지난해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올해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해야 할 여성 50인’ 중 1위를 차지하면서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 팩커드 사장을 잇는‘여성 경영인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휘트먼 사장은 16일 이희범 산업자원부장관 주관으로 열리는 ‘CEO 지상간담회’에 퀄컴 폴 제이콥스 사장, 시티그룹 로즈 부회장, 머크사 CEO 데이비드 앤스티스 등과 함께 참석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간담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 정도로 휘트먼 사장은 일정이 팍팍하다”고 귀띔했다.
한때 방한 소문이 퍼졌던 애플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는 오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도 바쁜 일정으로 최근 방한을 취소했다. 대신 MS 최고기술책임자(CTO) 크랙 먼디가 부산을 찾아 KT, 삼성전자 등과 협력 사업 구상을 논의한다.
우리나라 CEO 참가자가 220명으로 가장 많으며 미국(119명), 중국(105명), 홍콩(29명), 대만(26명), 러시아(38명) 순이다. 올해 참가자 수는 역대 APEC 사상 가장 많다.
800여명의 참가자가 각국의 쟁쟁한 재계 인사일 뿐더러 참가자 수가 워낙 많아 주최측은 숙박 배정에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21개국 정상 및 각료가 대거 방한하다 보니 최고급 객실은 1년 전쯤 예약이 끝났다”면서 “대다수의 CEO들은 어쩔 수 없이 18평 규모의 일반실에 묵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시 숙박사업단을 통해 숙소를 잡은 기업인은 500명 정도. 스위트룸 등 고급 객실은 10개가 되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들이 일반호텔이나 모텔에서 자야 할 판이다
800여명의 CEO 중 송도 국제도시 개발을 맡은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게일의 스탠리 게일 사장, 하와이 내셔널 은행 CEO 워렌 루크 등 58명은 배우자와 함께 부산길에 오른다.
부산=특별취재단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한미정상 4시간 대화
17일 경주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무려 네 시간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두 정상은 그동안 네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1~2시간 정도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두 정상은 경주의 한 호텔에서 한 시간 가량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어 두 정상 내외는 함께 오찬을 하고 유적지 관광을 하면서 환담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시간을 넉넉하게 잡은 것은 단순히 부시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국을 처음 방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양국 간에 적잖은 긴장이 있었던 점을 감안해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신뢰를 도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마련하자는 발상이다.
정상회담 장소가 다른 정상들과 달리 유일하게 청와대나 APEC이 열리는 부산이 아닌 경주로 결정된 배경에도 눈길이 쏠린다. 양국 정상이 천년의 고도(古都)에서 회담을 갖고 문화유적을 함께 감상하며 개인적 우의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
부시 대통령이 가까운 우방의 정상들을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해 회담을 갖는 것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경주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제안해 경주 회담이 성사됐다는 얘기도 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함께 한반도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는 방안뿐 아니라 한미관계를 포괄적ㆍ역동적ㆍ호혜적 동맹관계로 발전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공동선언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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