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기 전 “과연 여자가 남자 역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막이 오르고 페르젠 백작의 회상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목소리에서 ‘여성’이 느껴졌다.
그러나 페르젠과 마리 앙트와네트, 오스칼 등 세 주인공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이미 페르젠은 남자, 오스칼은 남장 여자라는 설정에 아무런 의문을 느낄 수 없었다. 11~13일 경희대 평화기념관 무대에 오른 일본 다카라즈카(寶塚) 가극단의 뮤지컬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관객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여성 단원만으로 이뤄진 다카라즈카 뮤지컬은 부자연스럽거나 퇴행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제목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자 이상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로 그려진 만화 속의 남자 주인공, 특히 남장 여자인 근위대 중대장 오스칼의 이미지는 여배우만이 완벽하게 그릴 수 있는 캐릭터다.
워낙 유명했던 원작 만화에 대한 관객의 추억도 곁들여졌다. 또 객석의 절반을 일본인이 메웠다. 한국 거주 일본인, 공연 관람이 포함된 단체관광에 나선 일본인들이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1914년 효고(兵庫)현 다카라즈카시에서 창립된 이래 수많은 인기 연예인을 배출한 스타의 산실이다. 단원이 되려면 2년 과정의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들어가 노래와 연기, 발레와 재즈댄스 등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 졸업 후 극단의 ‘하나’(花) ‘쓰키’(月) ‘유키’(雪) ‘소라’(宙) ‘호시’(星) 등 5개 ‘구미’(組), 즉 학급에 배속된다.
단원은 ‘세이토’(生徒), 즉 학생이라고 불리며 입단 연차에 따라 ‘연구과 ○년생’으로 불린다. 여기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면 따로 ‘센카’(專科)로 소속이 옮겨지고, ‘특별출연’ 형태로 각 구미 단위의 공연을 지원한다.
■학교와 극단, 연출ㆍ기획ㆍ사업 부문까지 통합된 사업형태로 분업의 시대를 헤쳐왔다. 도쿄와 다카라즈카시에 2,000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두고,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장기적이고 엄격한 ‘품질관리’ 와 함께 현대 공연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포섭하려는 자세가 생명력의 비결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전통국악에 묶인 우리 여성국극과는 대조적인 운명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뮤지컬 시장도 결국 다카라즈카처럼 공연ㆍ사업력을 겸비한 전문집단에 의해 진정한 성장 탄력을 얻을 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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