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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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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며

입력
2005.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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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이름을 알았던 사람은 르누아르와 밀레였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달력을 통해서 보았고, 밀레의 그림은 우리 손으로 농촌을 가꾸자는 4H의 상징처럼 마을 청년회관에 걸려 있었다.

노을이 붉게 밀려드는 저녁, 밭에서 일을 하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에 부부가 마주 서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그림은 저녁 늦게까지 밭에 나가 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내외가 함께 나가 일을 하는 동네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또 하나 친숙한 그림 ‘이삭줍기’는 우리가 바로 그림 속의 모델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우리는 저마다 앞치마처럼 허리에 보자기 하나씩 두르고 빈 논에 나가 떨어져 있는 이삭을 주워왔다. 형제가 온 논을 돌아다니며 주워도 한 됫박 될까 말까였지만, 그때는 쌀이 하늘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하늘이 무너져 내려 고향에 남은 형제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쌀이 곧 생명인데, 농민의 날, 그 생명으로 한 생명이 졌다. 우리가 정말 한 형제라면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가 있을까. 정말 방법이 없는 일일까. 나는 눈물이 난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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