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생활 1년째인 김기홍(50)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장은 북한 여직원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며 근무하는 것도, 북한 근로자들과 매일 부딪히는 것도 이젠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지점 개설과 함께 부임했을 때 지점에서 함께 일할 여성 동무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일 없습니다’라더군요. 해선 안될 질문을 했다 싶었는데, 웃는 얼굴로 ‘23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일 없다’는 말이 ‘괜찮다’는 뜻인 줄 몰랐던 탓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긴장했어요. 근데 지금은 여기가 북한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2주에 한번 서울 집을 다녀갈 때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하지만, 북한 군인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일주일에 한 두 차례 북한 관계자들과 삼겹살에 소주도 한 잔 기울인다. 김 지점장은 북한 사람들을 ‘순수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남북한 근로자들이 자잘하게 다투는 일도 많은데, 거의가 ‘욕’이 발달된 남한 말 때문입니다. 북한 말에는 욕이 별로 없거든요.” 2명의 북한 여직원들도 한 번 이야기한 내용은 다시 숙지시킬 필요가 없을 만큼 능력이 탁월하고, 남한 기술을 배우려는 북한측 관계자들의 열정도 높다는 설명이다.
물론 인프라가 없어 업무환경은 50~60년대 수준이다. 개성공단 내 2대 뿐인 전화 때문에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는 고사하고, 본점과 연락 한 번 하려 해도 한나절이나 기다려야 한다. 공단의 남한 근로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도 이자도 못 준다. 본점과 통신망이 개통되지 않아 돈을 받아도 자금을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금이 아니라 보관해주는 수준인 셈이다. 간단한 송금도 ‘여기 입금됐으니, 서울에서 돈 내주면 된다’는 식의 전화 연락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영업실적은 송금 672만 달러, 예금 88만 달러, 대출 15만 달러로 미미하다.
대출이라 해봐야 개성공단내 10개 남한 기업의 법인장들에게 개인 차용을 해주는 수준이다. 그러나 김 지점장은 “내년에 남한과의 통신 및 전산시스템이 완공되면, 현대적인 금융서비스를 통해 흑자경영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세 끼를 같은 식당에서 해결하고, 여가시설이 없어 남는 시간은 독서와 산보로 보내야 하지만 김 지점장은 “초대 북한 진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가와 처가 모두 이북 출신인 그는 “지금은 개성공단 지점이 해외점포로 분류되고 위험수당까지 받는 곳이지만, 하루빨리 국내점포로 분류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