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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스크린쿼터 없이 한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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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스크린쿼터 없이 한류 없다

입력
200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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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설가 존 파울스가 지난 5일 타계했다. 탁월한 작가 같았지만, 내 안목이 부족한 탓인지 그는 끝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남다른 데가 있다.

소설 ‘콜렉터’와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감동과 전율을 느끼며 읽던 무렵에, 동명의 영화들을 보았다. 두 영화는 일류 영화사ㆍ감독ㆍ배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개의 영화가 그렇듯이 그 영화들도 소설의 깊이와 향기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다양성 협약 후에도 축소 압력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국 소설에, 미국 영화였다는 점이다. 지난 세기 미국 영화는 세계를 휩쓸었다. ‘벤허’ ‘닥터 지바고’ 등 미국 영화는 중동과 러시아 등의 무대를 가리지 않고 녹여버린 거대한 용광로였다.

문화제국주의의 실체가 있다면, 바로 할리우드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할리우드 영화가 없었다면 각국 젊은이의 성장기도 황량했을 것이다. 그 풍요로움 속에서 문화적 자양, 상상의 즐거움, 선악의 가치관을 섭취했다. 세계인은 미국영화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사정은 바뀌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아직 막강하지만, 소재적 빈곤에 시달리면서 한층 상업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등 타 지역 영화의 발전과 성장을 도왔다.

이제는 한국영화도 재미 있고, 주제에 신토불이적 매력도 있다. 급기야 지난달 파리에서 할리우드에 대한 영화적 반란이 일어났다. 유네스코 회원국 투표 결과 문화다양성 협약이 148 대 2로 채택된 것이다.

이 협약은 문화상품에 한해서 자국의 보호조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전분야가 포괄되지만 핵심은 영화다.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 뿐이다. 미국과 가까운 영국도 이 협약을 지지했다.

몇 년 사이의 자료를 보면 영국의 고충이 이해된다. 영국의 자국영화 점유율은 14%, 독일은 8%, 멕시코 10%, 호주와 캐나다 3% 등이었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시장의 85% 이상을 독과점해 오는 동안, 각국의 영화산업은 황무지를 헤맸다. 다행히 한국은 이 대열에 들지 않았다. 스크린쿼터제 덕분이었다.

경제 관료들은 스크린쿼터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미투자협정(BIT)의 체결이 훨씬 경제적 이득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영화인들은 ‘미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45개국은 평균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 불과한 빈민국 뿐’이라고 꼬집고 있다. 또한 막상 우리에게 한미투자협정이 정말 긴요한 것인지, 실익이 스크린쿼터를 능가하는 것인지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면 경제 관료들은 무응답이라고 한다.

스크린쿼터가 마련한 토양 없이는 ‘한류’도 탄생할 수 없었다. 한류는 한국의 수출을 촉진하고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 끌어올린다. 2003년 한국은행이 영화의 경제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경제적 부가가치가 303억원으로 중형 승용차 2,800대를 생산한 것과 같고, 그 해 상반기 영화 수출액 181억원은 승용차 1,419대 수출과 맞먹는다는 것이었다.

●문화 민주주의도 존중해야

최근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압도적으로 채택된 지금도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이 각국의 문화적 예외와 영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 같은 무게로 문화적 민주주의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 경제 관료들도 미국이 엄청나게 뭉쳐 한 목소리를 낸 영화약소국에 귀 기울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일본어에 ‘다 함께 라면, 겁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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