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영업자나 샐러리맨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오래 사는 것”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찬찬히 곱씹어보면 수긍이 가는 점도 많다. 장수(長壽)를 걱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과거와는 달리 나이를 먹으면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고, 설령 일을 하고 있더라도 고용안정을 기대하기 힘들고, 그나마 조기퇴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대의 가장 큰 딜레마는 ‘짧은 기간 동안 벌어서 오랫동안 살아야 한다’는데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노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퇴직 후 제공되는 다른 복지지원제도 역시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근로자들의 노후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근본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불안한 근로자들의 노년생활을 조금이라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조기도입(12월부터 시행)키로 한 것이다.
현행 퇴직금 제도는 동일 직장에서 장기 재직하는 근로자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자리잡았던 옛날식 체제의 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현 노동시장은 연봉제가 확산되고 직장이동도 빈번해지는 등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재래식 퇴직금 제도로는 이런 추세에 부응할 수 없는 것이다.
퇴직연금제도는 이처럼 달라진 고용환경의 산물이다. 직장을 그만둘 경우 일시금 혹은 연금으로 지급 받을 수 있고, 설령 직장을 옮겼더라도 계속 적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퇴직 후 근로자의 생계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퇴직연금은 다니던 직장이 부도를 내 대규모 체불임금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근로자에게 수급권을 보장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피고용자뿐 아니라 사업주 입장에서도 긍정적 요소가 많다. 기존 퇴직금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마다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선 불규칙하고 예측 가능성이 낮은 지불요소가 된다. 퇴직자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엔 재정부담이 커져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매월 또는 매년 정기적으로 기여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의 예측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가 퇴직적립금의 운용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근로동기와 성취의식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퇴직연금은 고용자나 피고용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는 제도인 셈이다.
퇴직연금이 활성화한 구미 각국의 경우, 국민들은 기업과 개인의 책임 하에 스스로 노후생활을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 및 각종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퇴직연금의 도입과 역할은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12월1일이면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기존의 국민연금, 개인연금에다 퇴직연금이 가세해 3대축을 갖추게 된다.
새로 도입되는 제도를 통해 사업자와 근로자가 서로 협력하고, 근로자들에게 퇴직 후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기업과 종업원, 금융기관, 정부 등 퇴직연금 운영주체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김도훈 우리은행 Two Chairs 강남센터 PB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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