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내부자 거래, 가격조정, 과도한 거래비용 등의 추문으로 얼룩졌으며, 이미 신뢰를 잃은 상태다. 많은 지역에서 주식은 단지 도박의 대체물로 간주됐다.”
불과 2~3년 전의 국내 주식시장을 묘사한 듯한 이 글은, 사실 미국의 투자전략가 벤 워윅이 1930년대 미국 증시의 풍경을 설명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초기 증시는 ‘한탕주의’ 풍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됐고, 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치면서 완전한 선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덕택에 미국 증시는 1926년부터 2002년까지 투자자들에게 채권 대비 연평균 4.32%의 초과 수익률을 안겨주면서 장기투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1930년대의 미국 주식시장이 최근까지 국내 증시가 침체에 빠졌던 원인을 대변하고 있다면, 80년대 이후의 미국 증시는 우리나라에서 장기투자가 정착할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시금석이다.
실제 지금까지의 국내 증시는 ‘단기간 내 몇 배를 먹느냐’가 지상과제였던 투기시장의 성격이 강했다. 투자자들의 인식 부족에다 시장 자체도 장기 성장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들어 국내 증시의 업그레이드 조짐이 나타나고 적립식 펀드를 통한 장기투자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직접투자에서도 ‘주식저축’으로 표현되는 장기투자 문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회사원 조원경(35)씨의 사례를 보자. 조씨는 지난 7월부터 월급날마다 주식 10주를 사 모으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기아차 NHN 대우증권 등 우량주가 조씨의 투자 대상이다. 현재 짭짤한 수익률을 얻고 있지만, 당분간 내다팔 생각은 없다. 조씨는 “과거 조급하게 주식 거래를 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며 “앞으로는 정기적금처럼 주식을 조금씩 매수해 장기 보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기투자는 적립식 펀드와 함께 꾸준한 유동성 공급원을 제공하는데다 증시의 변동성도 줄일 수 있어 선진시장 정착의 관건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하려면 무엇보다도 수익률 보장이 중요하다. 과연 장기투자를 하면 ‘단타 매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대표 우량주 중심의 ‘분산투자’ 원칙만 지킨다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는 최근 진행된 수익률 비교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증권이 1990년 1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삼성전자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차 국민은행 SK텔레콤 LG필립스LCD KT LG전자 신한지주 S-oil 등 11개 우량주에 1억원씩 투자했을 경우의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투자기간이 길수록 연평균 수익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을 투자했을 경우 연평균 수익률은 27.7%였고, 3년 투자 때 31.7%, 5년 투자 때 33.7%였다. 10년 동안 투자했을 경우엔 연평균 수익률이 64.9%로 껑충 뛰어올랐다.
반면, 2000년 이후 주가와 개인의 매매 동향을 비교해본 결과, 개인투자자들은 ‘치고 빠지기’ 수법에 매달려 주가 흐름과 반대되는 매매 패턴을 보이기 일쑤여서 수익률이 시장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삼성증권 장근난 수석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도 ‘쌀 때 사고 비쌀 때 판다’는 원칙은 공유하고 있지만 심리적 요인 등으로 인해 적정 매매시점을 잡기가 어렵다”며 “지금이야 말로 국내 증시의 장기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고 본격적인 장기투자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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