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방송 도서 잡지 신문 등 기존 매체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나도 종이 신문보다는 인터넷 신문을 통해 사회를 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흥미 위주의 기사만 훑어보는 것으로는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신문은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볼 수도 있고, 긴 기사를 모니터를 통해 눈 아프게 보는 것보다는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보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종이 신문만이 주는, 정보를 ‘만질 수 있다’는 느낌도 내가 종이 신문 구독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어떤 신문을 구독할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독할 신문을 선택하기 위해 각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사설을 읽어보았다. 힘이 막강하다고 소문난 신문들의 사설은 어찌나 극단적인지 독자로 하여금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밝히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계속 읽다 보니 사설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이 신문은 이 문제를 이렇게 쓰겠구나’라고 예상할 정도가 되었고, 이런 신문을 몇 년 동안 보면 내 생각 또한 그 신문의 틀에 갇혀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어떤 신문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하려 들고 다른 신문은 그 신문들에 반대하는 형국이 마치 밧줄의 양쪽 끝을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같았다. 그런 신문을 읽다 보면 나도 어느 편에 서야 할 것 같고 세상을 극단적으로만 보게 될 것 같다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던 중 한국일보 사설을 보게 되었다. 당시 다른 신문들이 핏대를 올리던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에 대해 지루한 정치적 다툼을 하기보다는 타협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 문제를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정부가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려 하자 따끔히 비판하는 것을 보고 균형 잡힌 논조에 더욱 이끌리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신문사의 구미에 맞게 해석해버리는 것은 논조를 유지하기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점에서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신문’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장광익 전남대 경제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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