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인세계’가 겨울호에 ‘우리 시사(詩史)에서 과대평가된 시인, 과소평가된 시인’ 특집을 실었다. 전자로 서정주, 윤동주, 김수영, 기형도를, 후자로 박목월 박인환 전봉건 김종삼을 꼽았다.
하지만, 여기서 ‘과대ㆍ과소평가라는 말은, 이들 시인들의 시 세계의 일면이 지나치게 부각된 나머지 다층적인 조명이 부족했다는 의미에서의 과대ㆍ과소평가다.
우선, ‘서정주’에 대해 신철하(평론가)씨는 “한국 문학사 속의 서정주의 단단한 팻말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미당 시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와 달리 필자는 “진정한 문학이 내재하고 있어야 마땅할 생명성으로서의 ‘그늘’이 결여돼 있다”는 김지하의 비판, “그의 시에서 엿보이는 초월적 서정주의, 나아가 한국적 그것이 파시즘적 탐미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김진석의 평가를 소개했다.
‘윤동주’에 대해 이명원(평론가)씨는 그의 이미지가 ‘민족ㆍ저항시인’에 결박돼 “개인 윤동주의 섬세한 내면성을 ‘과소평가’했다”고 밝혔다. 그의 시에 깊이 침윤된 기독교적 세계관과 죄의식, 청춘의 비애 등을 볼 때, 그는 ‘센티멘탈 로맨티시즘’의 전형을 보여준 청춘의 서정시인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수영’을 쓴 박현수(경북대 국문)씨는 당대 현실의 억압이 주조한 ‘신화로서의 김수영’을 안타까워했다. 그 신화의 결과로 “그의 시의 여러 맥락 중 현실비판의 측면이 너무 강조”됐으며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그는 너무나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기형도’에 대해 홍기돈(평론가)씨는 죽음의 이미지에 매몰된 것을 반성하며 그의 여러 시에 나타나는 “가난의 다양한 체험과 이미지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어낼” 것을 제안한다.
반면, 김옥성(시인ㆍ평론가)씨는 ‘박목월’이 ‘청록파’의 이미지에 갇혀 중ㆍ후기의 생활지향적 서정시학과 종교적 시편들, 경상도 방언의 미학 등의 평가에 소홀했다고 주장했고, 이홍섭(시인ㆍ평론가)씨는 ‘박인환’에 대해 “(그의 시가) ‘센티멘털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될 만큼 가볍고 진부하”지 않았음을 ‘밤의 노래’ ‘검은 신이여’등에 등장하는 ‘검은 신’의 이미지를 근거로 주장했다.
또 문혜원(평론가)씨는 ‘전봉건’에 대해 ‘결벽한 아웃사이드’였던 그의 시적 태도가 “현실도피적”으로 여겨졌으나, 그의 시는 전쟁의 비극성을 건조하면서도 적확하게 묘사한 드문 성취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강연호(시인)씨는 ‘김종삼’의 시 세계, 곧 “언어의 조탁으로서의 의미도, 이념의 배제로서의 의미도 아니”며 “언어 형식이나 이념 자체를 의식하지 않은 절대 순수의 미학”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총론을 쓴 유종호(평론가)씨는 “시적 경향이나 유행의 변화는 당연히 평가에서의 변화와 부침을 야기하게 마련”이라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취향이나 이념 성향과 조화되지 않는 작품의 경우에도 성취도를 인정하는 비평적 관용의 기풍이 우리 사이에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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