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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장독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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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장독대의 추억

입력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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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어느 집이든 가장 볕 좋고 바람 잘 통하는 곳은 마당이 아니라 장독대이다. 도시의 집들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앞뒤로 터가 넓은 시골집들은 대부분 장독대를 마당 쪽보다는 뒤란에 두었다. 그곳이 편하기 때문이다. 밥을 짓던 중 마당에 나가 장을 퍼오는 것이 아니라 부엌 뒷문을 열고 나가 장을 퍼온다.

거기에는 집집마다 몇 개의 간장 단지와 고추장 단지, 또 된장과 장아찌 단지가 놓여 있었다. 몸집이 가장 큰 게 간장단지였다. 단지 뚜껑을 열면 까만 간장 위에 까만 숯덩이 몇 개가 떠 있었다. 또 어떤 단지는 장맛 부정 타지 말라고 왼쪽으로 꼰 새끼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쳐놓기도 했다.

장독대 옆과 뒤엔 앵두나무거나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앞쪽엔 그 집의 어린 여자 아이가 자기 손에 물을 들이려고 심어놓은 봉숭아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전에 언젠가 우리집 장독대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 모두 자기집 장독대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장독대 주변에 심은 나무와 꽃들만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저마다 장소만 다르지 똑같은 장독대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거나 해바라기를 하며 자랐던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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