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해영 외 옮김 강 발행 1만원
로알드 달(사진)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른 무르팍 앞에 앉아 신기한 세상 이야기 듣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몽롱해진다. 쫑긋 귀 돋우고 ‘그래서요? 그래서요?’ 애타게 조르면, 의뭉스레 웃으며 그 특유의 구수한 억양으로 풀어 놓던 ‘그런데 말이지…’의 기막힌 반전들. 그 서사의 흡입력과 중독성은 달 자신이 작품 서사 속에 즐겨 구사하는 내기나 도박의 그것처럼 차지고 질기다.
‘세계 챔피언’은 지난 여름 출간된 ‘맛’에 이어 그의 ‘베스트단편선’을 번역한 작품집이다. ‘클로드’라는 매력적인 몽상가가 등장하는 5편의 연작 ‘클로드의 개’를 비롯해 콩트처럼 짤막하고 밀도 높은 11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표제작의 클로드는 밀렵의 귀재다. 그가 지닌 다양한 밀렵 기술은 선친에게서 전수 받은 가전(家傳)의 비법들. 그는 선친의 기록을 깨기 위해 이웃 졸부가 꿩 사냥 시즌을 위해 키운 꿩 밀렵에 나선다. 수면제 먹이기 작전. 그는 잠에 취한 살찐 꿩 120마리를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클로드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것은 이 악동의 장난 같은 사건의 이면이다. 가난한 이웃들을 멸시하고 권세 있는 자들에게 굴종하는 졸부의 사냥 대회 훼방 놓기. 이제 그의 밀렵은 “장난이 아니라 성전(聖戰)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단독으로 벌이는 개인적인 전쟁”(14쪽)이 된다.
천진한 아이의 영혼에 닳고 닳은 승부사의 두뇌를 지닌 이 유쾌한 몽상가는 가짜 사냥개를 이용한 경견(競犬)대회 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고, 연인의 아버지(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점수를 딸 욕심에 침 튀겨가며 철 없는 사업 구상(구더기 공장)을 털어놓기도 한다.
작 중 인물들의 몽상은 탄복할 만큼 기발하고 치밀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끝은 대개 허무하다. 어쩌면 그 완벽한 반전에 그의 작품을 읽는 묘미가 있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몽상-실행-반전의 견고한 전개와 은근한 울림도, 그의 작품이 지닌 중독성에 대한 보잘 것 없는 해설일 뿐이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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