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갔던 한 젊은이가 고통에 시달리며 위궤양 약을 복용하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진료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 위암으로 죽어갔다. 전역 후 단 한 번도 따뜻한 밥상 앞에 가족들과 함께 앉아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동안 ‘국민과 함께하는 튼튼한 국방’을 표방하는 우리 국방부는 군은 최선을 다하였음을, 그리하여 책임질 일이 없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려한 것처럼 아쉽게도 군의 변명은 진실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이를 진료한 군의관은 두려움에 떨다 지쳐 공문서를 변조, 허위 작성하였음을 고백하고 말았다.
늦었지만 철저하고 진솔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을 규명하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제시하는 것은 국방부의 당연한 의무이다.
규정과 절차에 얽매인 경직된 군 의료 체계를 벗어나 병사들에게 과감하게 외부진료를 허용하고, 수준 높은 민간병원과의 협동 진료를 함으로써 진료는 확실히 하되 꾀병을 통한 근무기피, 의병 전역 등의 비리는 철저히 가려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의료대책이 될 수 있다.
이제 군의 울타리 안에서만 의료 수준을 운위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의료서비스가 군에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수준을 높이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군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뼈아픈 반성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야 할 때이다. 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불명예라는 도그마에 빠진 채 보안과 기밀이라는 장막 뒤에 숨으려는 행태를 더는 보여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국민의 군대는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일 수 없고, 장군의 집안에서 밥과 빨래를 대신하다 멸치 때문에 폭행당하는 병사가 있을 수 없으며, 위암에 걸린 병사를 한 달에 한 번 형식적으로 진료하다 치료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도록 부여된 계급체계가 봉건시대에나 있었던 신분에 따른 주종관계로 치환되어, 낮은 자는 아무리 아파도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다 진료와 간호라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와 더 나은 진료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꾀병’이나 ‘항명’의 핀잔을 주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 사회에는 ‘군대란 그런 것’이라는 자조와 체념의 망령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불합리와 몰상식이 난무하는 어두운 추억 속의 군대는 이제 우리의 의식과 현실 속에서 완전히 추방되어야만 한다.
군은 나라를 지킨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영토와 주권, 국민을 포함한 일체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분명하다. 군인은 ‘제복을 입은 민주 시민’이어야 하며 군은 우리 헌법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존엄성 앞에 모든 독선과 고집을 포기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부모들이 마음 놓고 자식을 군에 맡길 수 있도록 해 주어야만 한다.
군 의료체계는 결단코 군의 명령체계와 조직체계, 그리고 지휘부의 사고방식과 분리되어 작동할 수 없다. 병사들에게 이유 없는 인내심과 굴종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최우선적 가치로 여겨야 한다.
군은 반드시 국민의 사랑 속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고마운 존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 군대만이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한 군대야말로 내 아들, 내 조카가 될 수 있는 ‘제2의 노충국’을 병마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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