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나 없이 가게 해서….”
11월 1일 시작된 인구주택총조사를 총괄ㆍ지휘하고 있는 통계청 전신애(57) 사회통계국장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도 일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했다.
10일 두 딸과 함께 삼성서울병원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전 국장은 남편의 임종을 보지 못해 더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은퇴한 남편 이정의(65)씨는 9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병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옆구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던 남편을 재촉해 정밀진단을 받게 했지만 이미 간암 말기였다.
의사는 “손쓰기 어렵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렸다. 진단 직후 수술을 하긴 했지만 워낙 상태가 좋지 않던 터라 전 국장의 마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젊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다 보니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적었습니다. 게다가 통계청이 1998년 대전으로 이전한 후부터는 주말부부가 돼 얼굴을 맞댈 기회가 더욱 줄었어요. 남편이 우리 곁에 있을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에 초조했지만, 인구주택총조사라는 국가적 거사를 앞두고 일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5년마다 실시하는 총조사에서 전 국장은 조사 부본부장(본부장은 오갑원 통계청장)이라는 핵심 역할을 맡은 터였다. 게다가 올해 조사는 지난번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아파트 각 동 입구마다 카드 키가 새로 등장했고, 사람들은 문과 입을 꼭꼭 걸어 잠갔다. 이혼ㆍ재혼 여부 등 조사대상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민감한 항목 추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달부터 전 국장은 현장을 뛰며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러 다녔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 협조를 당부하며 조사원들을 격려하는 것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69년 서울시 9급 공무원 시절부터 통계 업무를 담당해 여성으로는 드물게 통계청 국장까지 오른 그녀의 경륜이 실무자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했고, 그 자신도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현장을 뛰어다닌 것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나빠졌다”는 딸의 전화가 걸려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기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결혼한 딸의 간호를 받고 있는 남편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총조사가 한창이어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수술 후부터 만나기만 하면 우리 부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했습니다. 남편은 ‘혼자 되면 무엇을 할 거냐’하면서 저에 대한 걱정이 끝이 없더군요. 그런 남편을 혼자 가게 하다니….”
남편은 9일 오후 3시 50분, 전 국장이 생방송 대담 프로그램 참석차 방송국으로 가던 중 눈을 감았다. 유족으로는 딸 유진(주부), 혜선(신한은행 대리)씨와 큰사위 박범주씨가 있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 30분. (02)3410_6914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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