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도 두려웠지만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3년 6개월 동안 동네 친구로부터 폭력에 시달린 A(15ㆍ고1)군은 담담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엄마가 재가를 해 남동생(13)과 함께 할머니(70)를 모시고 7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생활보호대상자다.
A군이 말하는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아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내던 B(15)군. B군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02년 4월부터 덩치가 작은 A군의 호주머니를 털어왔다. 몇 백원, 몇 천원이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A군에겐 큰 돈이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협박이 뒤따랐다. 돈이 없어 주지 못했다가 맞기도 했다.
하지만 A군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B군 역시 생활보호대상자다. A군은 자신의 씀씀이를 줄이고 B군에게 돈을 건넸다. 학용품을 살 수 없었고 점심을 굶는 일도 허다했다. 할머니에겐 내색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3년 동안 B군이 뜯어간 돈은 모두 180만원.
사정은 더 나빠졌다. A군은 올해 고등학생이 되면서 유일한 생계 수단인 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 45만7,000원을 할머니 대신 관리하게 됐다. 공부를 잘하는 A군은 학교로부터 장학금과 후원금도 매달 5만원씩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군은 더욱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B군은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무려 237만원을 빼앗아갔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26만원까지 빼앗긴 적도 있었다. B군은 직접 받기가 불편하다며 A군에게 통장을 만들 것을 강요했다. A군이 돈을 입금하면 B군은 카드로 인출해 갔다. B군은 뺏은 돈으로 여자친구에게 커플링을 해주고 자신의 휴대폰을 사고 가출비용에 썼다.
A군은 “처음엔 액수가 적어 그냥 줬는데 액수가 늘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척에게 받아 한푼 두푼 모아놓은 돈도 바닥이 났다. 친구를 신고하는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용기를 내 폭력예방인터넷사이트에 피해사실을 올렸다. 경남 진주경찰서가 수사를 시작하면서 고통도 끝났다.
A군의 할머니가 합의를 원해 B군은 처벌을 면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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