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찌개엔 김치가 참 많이 들었네. 회충 알은 없을까?” “걱정되면 꼭꼭 씹어 드셔. 회충 알도 부서지고 소화도 잘 될 게야. 일거양득이지.”
한 대학병원의 구내식당에서 젊은 남녀가 점심 식사 중에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식약청은 왜 뜬금없이 시판 김치의 회충 알을 검사해 발표했을까?” “김치보다는 배추부터 검사했어야지. 양념 재료도 검사하고…” “맞아. 그동안 김치 먹고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먼저 조사했어야지.”
그들은 마치 ‘회가 동한 듯’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으며 거리낌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구충제 복용보다는 기생충 검사가 먼저지. 전에는 단체로 대변 검사를 했었지.” “그래. 공연히 구충제를 먹는 건 여러 면에서 손해야. 구충제 제조회사만 살판났지.” “그런데 회충 알이 어떻게 배추에 들어갔을까? 제대로 썩히지 않은 퇴비 때문일까?” “농약을 치지 않고 퇴비를 사용한 유기농 채소는 괜찮을까?” “요새 자주 발생하는 식중독 사고는 친환경 농산물과 관계가 없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퇴비 대신에 화학 비료를 사용한 청정 재배를 적극 권장했었지.” “이 시금치는 청정 재배한 거겠지?”
그들은 나물을 먹으며 대화를 계속했다.
“배추 값이 급등한다는 뉴스도 이해할 수가 없어. 집에서 직접 담근다고 해서 회충 알이 없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야.” “배추를 수돗물로 세 번 이상 씻더라도 회충 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 “그런데 기생충이 어디 회충뿐이야? 요충, 흡충, 조충 따위는 검사하지 않았나?” “그런 것보다 우리 사회의 부를 축내는 인간 기생충이 더욱 큰 문제지.”
누굴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아무튼 한 김치회사 경영자는 이번 기생충 알 검사 발표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했다. “판도라 상자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저희에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남은 문제가 너무 많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은 기생충의 감염원이 될 수 있는 분뇨처리시설 등의 위생적 관리(기생충질환예방법 제6조)에 얼마나 철저했나? 얼떨결에 망신을 자초한 김치 종주국의 체면은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이번에도 와글와글 떠들다가 곧 잊어버리지 말고, 우리 먹을거리 안전의 기초를 다지는 기회로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조영일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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