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총수 일가 불구속 기소 방침은 강정구 교수 파문을 계기로 불구속 수사 원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 검찰 수사 관행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다.
이번 사건은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으로 검찰 수뇌부가 교체되는 파문을 겪은 뒤 새로 내정된 정상명 검찰총장 후보자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총수 일가의 구속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수사팀은 당초 검찰 수뇌부에 올린 보고서에서 박용성 전 회장만 구속하는 안과 두산 총수 일가 전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안에 대해 장ㆍ단점을 함께 제시한 뒤, 박 전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뇌부가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원 불구속 안을 택한 것은 그 동안의 조사를 통해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지시 사실이 확인된 마당에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박 전 회장을 굳이 구속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 안팎에선 이 사건이 선례가 되어 공안사건은 물론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한 인신 구속을 최대한 자제하는 관행이 정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환기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이 특정 재벌 봐주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엄하게 처벌되는 중죄로서 그 동안 대부분의 비슷한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예외 없이 구속됐다.
가까운 예로는 비자금 219억원을 조성한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회사 자금 310억원을 횡령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편법 주식거래로 회사에 2,071억원의 손실을 끼친 최태원 SK 회장 등이 구속됐다. 때문에 이들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검찰이 불구속 기소할 경우 법원은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 사실상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실적 측면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수사 원칙이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천 장관 본인은 “피의자가 혼자인 강정구 교수 사건과 여러 관련자가 입을 맞출 수 있는 사건은 성격이 다르지 않겠느냐”고 밝힌 바 있어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의 동반사퇴가 처음부터 불구속 방침을 염두에 둔 검찰 수뇌부와의 사전교감에 따라 이뤄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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