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가부장주의’ ‘새로운 가족문화’ 등의 제목을 단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남성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변화가 물론 없지는 않지만 가정 문제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 창구에는 여전히 법적, 제도적 불평등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재산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의 불합리한 내용과 관련된 상담이 많다.
재산 관계를 둘러싼 상담 중에는 남편이 재산을 처분하겠다며 이혼을 강요하는데 남편의 일방적인 재산 처분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남편의 무리한 주식투자 및 보증, 도박 등으로 함께 모은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제권을 독점한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고통스러우므로 이혼은 하지 않고 재산 분할을 받을 수는 없는지 등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혼을 앞두고 남편이 고의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에 대한 호소도 적지 않다.
이는 현행 민법이 부부 재산에 관해 별산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별산제는 부부가 각각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하여 부부가 각각 관리·사용·수익할 수 있고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부부의 공유재산으로 추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관행적으로 집과 같은 주요 재산을 남편 명의로 하는 경우가 많아 남편이 일방적으로 재산을 처분하여도 명의가 없는 아내는 그 재산에 대한 지분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전업 주부는 물론 취업 주부라 하더라도 가사와 양육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맡고 있는 현실에서 가사 노동의 가치를 재산 관계에 반영할 여지가 없어 특히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현행 부부재산제인 별산제는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부간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어 갈등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여성들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을 처분할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혼인 중 재산 분할을 인정하며, 주부의 가사 노동의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민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부부 사이에 실질적인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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