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 언론이 시장경제 발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4년 늦가을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당시 정권이 국제화를 내세운 지 1년도 안 되어 세계화를 내세워 국민을 오도할 때, 각 언론사는 무엇을 하였는가?
세계화를 한다는 미명하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너무 일찍 가입하고 국내개혁에 소홀히 할 때, 어느 언론사가 부당함을 지적하였는가?
우리 내부의 잘못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금융으로 도와준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름을 붙여 ‘IMF 위기’라고 작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외환위기에 대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사법부가 못 가릴 때, 언론은 제대로 가렸는가?
신용카드를 길거리에서 발급할 때, 재벌과 금융감독기구의 잘못을 제때 지적하였는가? 퇴출당하여야 할 신용카드회사를 경쟁금융회사에 지원하도록 하는 반시장적 조치가 나올 때, 그것을 시장친화적이라고 미화한 언론은 어디인가?
●왜곡 보도로 국민판단 흐려
외환위기에 신용카드위기까지 겹치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 관계를 제대로 독자나 시청자에게 전달한 언론이 있는가? 모든 경제주체가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잘못해서 경제가 몇 년째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인가? 언론에 묻고 싶은 것은 끝이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한국경제는 4ㆍ4분기 성장률이 3ㆍ4분기에 비해 연률로 10% 이상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 직후 언론의 여론조사를 보면 새 대통령이 하여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피설문자들은 꼽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선거 직전 수개월간 경제위기론이 다수 언론에 의해 전파되어 잠재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성장을 할 때에도 국민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어떤가? 금년 3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2ㆍ4분기 대비 1.8% 성장했을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정치를 발표하였다. 이는 연률로 7.2%에 달하는 성장률이고, 잠재성장률을 초과한다.
2002년 4ㆍ4분기 이래 최고의 성장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경제가 뒤죽박죽이고 희망이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1년 중 상당 기간에 원화의 대외가치가 너무 오르는 것을 걱정할 정도인데, 그러한 경제가 위기이겠는가?
언론의 왜곡으로 경제주체가 필요 없는 비관을 하게 되면 민간소비나 설비투자가 적정수준으로 늘 리 없다. 그리하여 향후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수 있다. 언론의 힘은 그토록 막강한 것이다. 언론이 정치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감퇴하였는지 모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왜곡을 일삼는 언론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소비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소비자이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본다. 대통령의 선택과 장관 등 고위 공무원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
자유 국가이니까. 그러나 고위공직자가 어떤 언론을 선택하고 있느냐를 인사권자가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이 말로만 국정 철학을 같이하는지 마음속으로도 그런지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 신용카드 위기에 책임 있는 자들을 시장주의자로 미화하고, 선진국 10분의 1수준으로 부동산 보유세를 높이자는 8ㆍ31대책에 대하여 ‘세금폭탄’이란 용어를 구사하여 부동산거품을 통한 제3의 경제위기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일부 언론의 본질을 고위직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보거래하는 고위직 없나
청와대는 순진하게 노출된 경우에 대하여도 경위를 알아보아야 되겠지만, 혹시 아직도 누군가 사익을 위하여 언론과 은밀한 정보거래를 하는 고위직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몇 있으면, 왜곡언론의 정권에 대한 평가도 더욱 낮아져서 왜곡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왜곡언론이 활개치는 한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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