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몸이 된 이 순간, 미국이나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은 다 잊었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맛봤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9월 미국에서 국가기밀유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달 4일(현지 시간) 완전한 ‘자유인’이 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ㆍ64)씨가 10년여 만에 그리운 고국 품에 안겼다. 김씨는 부인 장명희(61)씨와 함께 6일 오후 5시10분 대한항공 KE094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10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서운함이 쉽게 없어질 순 없었다. 김씨는 “사건 초기 과한 형량을 부과했던 미국 정부나 구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정부에 매우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파이도 아니었고 한국 정부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었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는 “이제 와 보니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며 과거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준 국민과 후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김씨는 “나와 백동일(로버트 김 모국방문준비모임 대표) 전 대령, 이번 사건은 한반도의 분단 때문에 생긴 부산물”이라고 규정했다.
‘10년 영어(囹圄)’의 처지 속에 가장 힘든 때를 묻자 김씨는 “교도소 수감 시절, 아들 뻘 되는 교도관에게 ‘Yes, Sir. No, Sir’하며 상황에 따라 기분을 맞춰야 할 때 많은 모멸감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우선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아 뵙고 늦었지만 ‘그 동안 효도를 못해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로부터 정보를 받았던 백 전 대령은 김씨가 체포되던 당시를 떠올리며 “10년 1개월 12일 만에 뵈었는데 할 말을 너무 많이 생각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오히려 ‘이젠 앞만 보고 갑시다’라는 선생의 위로만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동생인 김성곤(42) 열린우리당 의원은 “교도소에서 형님의 모습을 본 지 2년 만이다.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인데 생애 최고의 선물로 하늘이 형님을 보내주셨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김씨은 7일 전북 익산시 영묘원에 있는 부모의 납골당을 참배하고, 8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영종도=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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